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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희망도 없는 나이

그런 나이가 있나요?

by zejebell

나이가 들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미래보다 과거를 더 자주 떠올리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과거의 경험에서 자꾸 무언가를 끄집어내 주변에 말하고 보여주고 싶어 한다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과거에 좋았던 것들이나 힘들었던 부분을 자꾸 곱씹고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제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꿈이나 희망이 또 없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에게는 어렸을 때처럼 거창하고 뭔가를 이루고 싶은 큰 꿈과 희망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작고 소박한 현재의 저라도 노력한다면 이룰 수도 있을 법한 그런 꿈이 있습니다. 아마 조금은 더 현실적인 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꿈들과 비교해 보자면 많이 쪼그라든, 꿈이라고 말하기에도 뭐 한 지극히 작고 작은 희망사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젊음이란 것이 사라진 뒤이기 때문에 더욱더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예전에 나이 많은 어르신께서 마음은 청춘에 머무르고 있는데 어느새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20~30대의 마음은 여전한데 몸은 나이 듦으로 인해 예전 같지 못함을 느낄 때마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기도 싫고 할 필요도 못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점점 그 나이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보니 그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이제 이만하면 결승점에 다 와가지 않은가 싶었는데 제 생각과는 달리 결승점은 아직도 멀리 있고 오히려 중간에 힘이 빠져 그곳까지 걸어서라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라도 힘을 내어 결승점까지 도착해서 쉬고 싶은데 현실은 참으로 녹록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사가 생각같이 풀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그렇지 않기에 꿈과 희망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는 시간과 힘, 젊음의 부스러기에 의지하여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희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 있는 한 조금은 덜 늙어간다는 말에 또 다른 희망을 걸어 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자신만의 추억 속 멈춰버린 시간입니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생각이 늙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그 양만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 속에서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면서 결승점이 코앞인데 그걸 모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포기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어리고 젊은 나이를 가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은 이 나이가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그들의 꿈과 희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이 닥쳐오게 되고 그제야 그 마음, 그 기분을 이해하게 됩니다.


흰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 속에는 20~30대의 젊었던 시절의 마음들이 여전히 숨어있습니다. 다만, 철없던 시절의 그 마음과 정신이 자라지 않고 그대로 정지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 시간의 축복을 받아 성숙해지고 그 시절에(진짜 어리고 젊었던) 없었던 현명함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면 여전히 희망을 꿈꾸기에 모자라지 않은 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은 나이라면 그 어느 순간에 존재하든지 꿈과 희망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과 희망은 역경의 순간에 조차 자신을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망가지고 시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매 단계가 그렇듯이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독자적인 마법을 숨기고 있고, 특유의 지혜와 고유한 슬픔을 갖고 있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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