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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척척 Jun 25. 2023

그의 ADHD_(1) 뻔뻔한 지각쟁이

 고군분투 마음 공부 일기 04

그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내가 성인 ADHD에 관심을 가지고 접했을 때, 그와 만난 지 3~4개월 되었을 때쯤인 것 같다.

증상을 읽어나갈 때, 나는 자연스럽게 나에 대입해서 보다 보니 나에게는 일부 해당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지 못한 부분, 성미가 급한 부분 등...


정보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증상 중에 남자친구에 너무 해당하는 증상들이 있었다. 

그가 ADHD라는데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목했던 그의 증상은 주로 손,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고(다리를 떤다거나), 모터가 달린 사람처럼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모습 등 본인은 알기 어렵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바로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오빠, 나랑 오빠 ADHD 100%야!"


나와 그 모두 그 당시는 가볍게 여겼다. 


마치 mbti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지났다.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만의 즐거움, 우리만의 싸움으로 우리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너무 속상하고, 화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지각과 연락이었다. 


이 문제는 여느 다른 커플들과 다르지 않게 보인다.

어쩌면 그는, 모든 다른 커플들도 약속과 연락문제로 싸우니, 자신도 그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해 왔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치부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나와의 모든 약속 및 일정에 최소 1시간을 지각했다.

지각의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주로 게으름 피우다가 늦었다.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혹은 잠들어서 등)

이때 연락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늦는 사람이 가지는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지각 중 연락이 되더라도, "지금 출발해"등의 거짓말을 하고도 1~2시간 있다가 출발하고, 그 사이 미리 이야기를 안 해주는 새에  금방 도착할 줄 알고 나는 모두 준비한 채로 수 시간을 기다리는 순간들이 생겼다.


어떻게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시간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아."

"늦는다고 미리 말을 했으면 나도 내 볼일을 보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호소를 해보아도 그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의 몇 가지 논리가 이미 있었는데

- 친한 친구, 연인 간의 관계는 편했으면 한다.( 연인 간의 시간 약속은 시간을 지키는 약속이 아니라 그즈음~ 의 뜻이다)

- 집으로 자신이 찾아가는 약속(내가 집에서 픽업을 기다리거나 집에서 만나는 약속)은 내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말이 아예 통하지 않는 기분에 가슴이 답답했다.


앞서 언급했듯, 나도 지각쟁이였다. 어딜 가나 "나 조금 늦을 거 같다"는 말을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1~3시간씩 늦고도, 연락을 하기 힘들 수 있지?


그는 - 아주 오랫동안 지각 문제에 시달렸고 이미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지쳤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늦는 것으로 인해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힘들어서"로 연락을 못 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무리 비보를 전하는 게 힘들어도 그걸 회피하느라 상대방의 시간을 버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쉬운 

- 약속 시간 지키기

- 지각할 때 지각한다고 말하기

을 위해 이렇게 까지 설득과 싸움과 상처를 겪어야 하는지 속상했다.


그는 상대방이 약속 시간 늦는 것에 자신은 무디기에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와 비슷한 지각 수준의 한 친한 친구의 예를 들었다. - 그 친구는 adhd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어디서나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하고, 한번 관심을 얻고 나면 관심을 더 이상 주지 않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절대 사과할 줄 모르고, 어딜 가나 매력적으로 보이며, 외모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


멋진 데이트도, 

나를 먼저 기다리는 것도,

예쁜 말도 아닌

겨우 지각하지 않는 것으로 매번 언쟁을 벌여야 한다니 너무 속상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존중도 못 받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는 기본적인 출근, 미팅 등은 모두 가능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나와의 약속이 어려운 것이었다.) 


- 내 두 번의 생일날도 모두 연락도 안된 채 나는 3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미리 준비한 것도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  어떤 크리스마스에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을 하고 돌아온다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이 안끝날 것 같은데 미안해서 그냥 연락을 안받은 것이다.  늦는다고 말했으면 당연히 서운했겠지만, 말을 안해서 늦게까지 밥도 못 먹고 기다리느라 굶는 상황은 서운이 아니라 화가 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사랑 받기는 커녕 기본적인 예의도 안 갖추는 사람이라며 헤어지기 참 쉬웠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그 같은 기간 동안 그가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가 가진 어려움들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오히려 희망을 가졌다. (바로 구원환상일까?)


<내가 확신하게 된 그의 ADHD증상>

-  기본적인 위험에 대한 감각이 많이 부족하다 ( 차 안 어딘가에 키를 떨어뜨렸는데, 찾기 귀찮아서 차를 몇 달동안 안 잠그고 지낸다. 찾아도 주로 안 잠근다) 

- 내비게이션을 보고도 경로를 자주 벗어난다. (다른 생각하느라)

- 운전으로 5키로 미만의 같은 경로를 수년 간 매일 왕복해도, 그 길을 외우지 못한다(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 월 수십 만 원의 주차 과태료를 낸다.

- 스트레스 받는다는 이유로 체납을 할 때가 있다(납세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골치 아파서)

- TV에 나올 법한 쓰레기 집처럼 집이 더러워질 수있다 - 썩은 우유를 수 개월 동안 집 앞에 포장도 안 뜯은 채로 둔다거나, 배달음식 찌꺼기가 썩어서 책상에 펼쳐진 째로 그대로 지낸다. 

-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 집중에 되지 않을 때는 주변을 부산스럽게 살피고 다리를 떤다거나 손가락을 움직인다.

- 통화 중에는 움직임을 멈출 수 없다(모터가 달린 것 처럼).

-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방해받을 시 굉장히 예민해진다)

- 영상물, 게임 등에 심각하게 중독된다 (한번 빠지면 모든 종류의 책임감을 잃는다 - 연락두절)


이런 모습에 본인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방이 더럽거나, 생활 습관이 무너지는 때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ADHD증상(집중력 부족) 문제로 인해 자신이 멍청한 줄 알았다고 했다. 학업 성취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2배 이상의 노력을 해왔다고 한다.  내가 지켜본 그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쉽게 무너지기에 다양한 "장치"를 만드는 것에 집착해 왔다.

- 스터디 모임(온, 오프라인) 만들기

- 다양한 메모 및 할 일 리스트 적기

- 신발에 짐을 두기

- 휴대폰의 중독적인 앱들 모두 잠그기


그는 평생 자신의 증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노력을 존경스러울 정도로 많이 해왔다. 거의 그런 활동들이 그의 삶을 정의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무 쉬운 것이 그에게 힘든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본인은 본인으로밖에 안 살아봤기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그에겐 어려운 과업들을 달성할 수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나는 오래전 그에게 마음속으로  ADHD를 확진했고, 많은 문제 행동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너무 많은 일들과 달리, 감사하게도 그에게는 의학적인 해석이 가능한 병명이 있었고, 치료제도 있었다.


내가 그의 병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를 무턱대고 미워하기는 힘들었다. 

최대한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오랜 시간 ADHD 증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오면서, 본인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합리화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나의 기준으로는 적반하장, 무논리, 예의없는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증상이 없어진다면 조금씩 그런 합리화와 억지들이 사라지고 기본적인 공감 수준을 얻어가게 되지 않을까?


속상하고 화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기에, 언젠가 그가 치료를 받지 않을까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다음에서 계속) 

ADHD 환자의 가족, 연인이 병원에 데려갈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P5CPs9PiBmw?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Shar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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