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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척척 Jun 29. 2023

그의 ADHD_(3) 약을 먹다

고군분투 마음 공부 일기 06

그는 약 복용을 시작했다.

콘서타 18mg로 시작해서 한 달 남짓 만에 54mg로 증량했다.

본인은 너무 만족하며 최대치로 증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괴감이 들만큼 무기력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많은 생활 습관들과 어렵던 과제들이 수월해지기 시작하면 그 간 자신의 증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평생 만들어온 합리화와 억지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지 않을까?


나의 기대였다. 

내가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들에,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논리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듯한 태도를 보았을 때, 너무 견고해져 버린 합리화에 벽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증상이 만들어 낸 태도라고 내가 합리화한 걸까?


내가 남자친구의 행동 변화를 기대하자 , 남자친구는 부담스러우니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부담을 준 건 정말 내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일 복용 기록을 했다. 

약에 만족했다.

대부분의 주요 부작용들을 겪었다.


약을 먹으면 그가 나에게 좋은 연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정말 잘못된 착각이었다.


오히려 복용을 시작한 바로 첫날부터 나에게 상처되는 말과 행동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것은 모두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아직 복용한 지 1달 정도밖에 안되었으니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겠지... "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식욕과 성욕이 떨어지면서, 미루던 모든 일들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부작용이겠지 생각했다.


그는 오직 나에게만 예민해졌다.


 "이렇게 비참한 취급을 당할 수가 있을까?"

" 누가 내게 이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나?"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게 그의 본모습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외면하던 그의 속성, 책에서 말하는 ADHD 증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물론 그가 갑자기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도 그의 잘못들에 이미 지쳐있었다.

약을 먹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약을 먹은 순간부터, 내가 그에게 그동안 억울하던 모든 것들을 기대하고 요구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 대로 더 큰 실망을,  남자친구는 내가 그를 괴롭힌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와 나의 관계에서, 나만 이해하고, 챙겨주고, 예뻐해 주는 어른의 역할을 맡는 것에 지쳐있었다 

약을 먹으면 이제 그가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자신의 못난 행동을 내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더 심해지고, 합리화와 나의 모든 것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약을 먹은 그는,  내 ADHD 증상 때문에 본인이 힘드니 내가 병원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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