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세상 속, 나를 지키는 가장 느린 스텝
오늘은 학원 초등부 팀장님과 점심을 함께했다. 허리가 아프신 와중에도 조만간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며 기어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 다정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감사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식사 도중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나는 여전히 조직생활의 적정 거리를 가늠하는 데 서툴다. 동료와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속내를 비춰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나는 그만 내 안의 자격지심을 꺼내놓고 말았다. 전임이 아닌 파트 강사라는 신분, 그리고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일대일 대화였음에도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나는 그 서늘함을 즉각적으로 감지했다.
말을 뱉자마자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구태여 설명을 보태봤자 상황만 더 어색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소심한 나로서는 나름의 과감한 선택으로 해당 주제를 황급히 닫고 다른 화제로 대화의 물길을 돌렸다. 다행히 사려 깊은 팀장님은 내 의중을 읽으신 듯 자연스럽게 응해주셨다.
나를 괴롭히는 이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임 강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장님께서는 경제적인 이득을 들어 여러 번 주 5일 근무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주 4일 근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남은 사흘 중 이틀은 꼬박 강의 준비에 쏟아야 하고, 단 하루는 온전한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 5일 출근은 나에게 '일주일 내내 일만 하는 삶'을 의미한다. 나에게 그것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강의 준비가 능숙해져서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날이 오기 전까지, 전임으로의 전환은 요원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 못난 자격지심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나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생존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단호하게 "휴일 사수"를 외치는 이유는 내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강의하는 즐거움이 크다 해도, 일주일에 단 하루의 숨구멍이 없다면 나는 채 3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회사원으로서의 나에게는 마음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온전한 하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아직 파트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타인의 시선에는 내가 게으르거나 불성실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나아가는 중임을 안다. 오래 가기 위해 천천히 가는 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20대 내내 수없이 흔들리며 겨우 찾아낸 나만의 방향과 속도이기에, 이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한, 세상을 만나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고 계속 가보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춤, 파반느를 추듯이.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