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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Apr 16. 2023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나를 다르게 본다

늙는다는 것


 최근에 회사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행사를 도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그 행사 중 하나는 한국-일본 언어교환이다.


 마케팅에 있어서 플랫폼만큼 중요한 매개체는 없다. 네이버와 구글이 광고로 잘 먹고 잘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예산은 늘 한정적이기에 가성비를 따질 필요가 있다. CPA (Cost Per Action)와 같은 지표가 등장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소비층을 확실히 규정할 수 있다면 타겟팅 광고가 효율적이고, 그 중 가장 만만한게 커뮤니티다. 예를 들면 컴퓨터 하드웨어로 유명한 퀘이사존, 힙합으로 유명한 힙합플레이야 등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전세계에서 한국만큼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달한 나라가 거의 없다. 일본의 5ch와 세계적으로 Reddit 정도. 이 특성은 밴쿠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홍보할 곳을 찾아보면... '없다.' 한국의 우벤유나 핼로밴, 밴조선 같은 커뮤니티가 없다. 다행히 일본은 작지만 하나가 있다. 바로 JP Canada. 정직한 이름의 이 커뮤니티는 거의 유일한 밴쿠버 일본인 커뮤니티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원이 운영을 한다. 그래서 우리 회사를 대놓고 홍보하면 제재를 당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에 대한 인지도를 올려야했다. 그런데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것을 대놓고 노출시키면 안됐다. 이 두 가지 조건의 합의점이 언어교환이 된 것이다. 일본인을 모으기 위해 한국인을 모으는 느낌이랄까. 일본팀과 우리는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착오가 있었지만 나름 반응이 있어 3회차를 기획 중이었다. 참가 신청서가 들어왔는데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40대인데 괜찮을까요?"





 지난 주 쯤 엄마와 전화를 했다. 최근 캄보디아에 다녀오면서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셨다.


"회화 늘리려면 대화를 많이 하는게 가장 좋겠지? 요즘 온라인으로 그런 모임 찾아서 많이 가던데 나도 그거 해보려고."


 엄마는 올해 한국나이로 55세이다. 내가 저 말을 들었을 때, 안타깝게도 제일 먼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미 대구에서 언어교환에 나가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주기적으로 해야한다. 그러니 친구 관계를 만들어야하고, 친구 관계는 매력적인 사람에게 기회가 많이온다. 그래서 2-30대가 주로 참여하는 언어교환에 4-50대가 가면 쉽지가 않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대화도 잘 안통하고 심리적으로 먼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세대마다 생각하는게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인은 더욱. 모임에 다녀온 엄마가 머릿 속에 그려졌다.


 신청서의 주인공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닌 듯 했다. '괜찮을까요?'에서 이미 의기소침해진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항이 아닌 단순히 자기 나이를 얘기하는데도. 좀 슬프지 않은가. 무슨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가만히 살다보니 40대가 됐는데, 그 나이가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게. 내 마음의 열정은 그대론데 세상이 안받아주잖아. 나의 존재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런.


 나이의 벽은 여기서만 느낀게 아니다. 이민을 하고싶은 50대 부부가 있었다. 남편분이 일을 해서 아내분만 사무실에 방문해 상담을 진행했다. 나이가 들어서 이해력이 부족하다며 거듭 추가 설명을 요청하는 선생님.


"남편이 원래 과장 직급인데..."

"선생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직급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연방정부 프로그램이 되는 거라 하셨죠?"

"네. 나이 점수가 0점이긴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문제가 되는 날이면 내가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 쓸모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기분이 든다. 실망한 눈을 보고 있으면, 이민길에 꽃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2-30대 보다 훨씬 마음이 아프다.


 

  1분 7초에 나오는 아저씨의 마음이 그런 것 아닐까. 나는 내가 그대로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나를 다르게 보는 그 기분. 신청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사수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늙는다는 건 슬픈거야."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참여가 어렵다는 메일을 쓰고, 전송버튼만 정처없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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