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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Feb 19. 2022

나란 인간은 중간이 없는 인간

1년 전쯤, MBTI란 말이 처음 내 귀에 들어왔을 때는 미국 주식 종목이나 되는 줄 알았다. 만났던 사람들이 대부분 40대, 50대 아저씨들이었으니 대화 중간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면 주식 얘기나 부동산 얘기를 늘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런 관심 없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졸린 눈을 연기하곤 했는데, 눈치 빠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었다. 

 마감을 하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MBTI를 검색해봤다. 아, 심리유형 테스트구나. 뭐에 홀린 듯이 자연스럽게 심리테스트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질문지였지만, 1분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나답지 않은 집중력을 보이며 빠져들었다. 나란 인간이 특정 상황에서 대충 어떤 대처를 하는지,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는지가 주를 이뤘고, 내 첫 MBTI 결과는 INFJ(선의의 옹호자)로 나왔다.

 그 이후 TV에서나 유튜브에서 MBTI가 한 번씩 언급될 때마다 나도 MBTI를 해보고 결과까지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요즘 시대에 뒤처지지 않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들과 MBTI와 관련해서 처음으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다. 

 “오빠들은 MBTI 뭐 나왔었어요?” 

나와 나이가 같은 다른 남자 동기에게 먼저 대답할 기회를 먼저 주었다. 혹시라도 MBTI에 관해 모를 경우를 기대하면서.

 “그게 뭐야?” 그 친구는 나도 같이 몰랐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애절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반대로 정말 무식한 사람 쳐다보는 것처럼 대응해줬다.

 “하.... 이래서 아저씨들이랑은 대화가 안 된다니까. 오빠는요?”

 “나는 뭐 옹호자? IN 뭐였더라...” 이 정도면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 나이가 어린 여자 동기는 휴대폰을 검색하더니 곧장 내 MBTI가 INFJ라는 것을 금방 알아냈다.

 “좀 맞는 것 같아요?”

 “글쎄. 아. 그건 맞는 것 같더라. 중간이 없는 인간이라는 거”

INFJ의 특징들을 훑어보며 내 인간관계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들을 생각하게 됐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후회라는 감정보다는 그저 잠깐의 회상이었다. 그러고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인간관계에서 중간이 없다는 점은 약간의 내 노력도 들어가 있는 듯하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면 동아리나 모임 같은 것도 질색했으니 어정쩡한 연결고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그 어정쩡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속으로 쿨하지 못한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내가 뭐 하러 이 재미없는 아저씨들을 만나고 있는 거지? 내 인생에 그리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런 형식적인 자리는 너무 재미가 없는데?’ 등의 생각들을 가지며. 어쩌면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일 수도 있다. 남들은 그런 인간관계나 그 시간들을 유연하게 버티며 넘기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의 천부적인 습성처럼 재미없는 건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렇게 인간관계속에 포함된 시간 활용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다 보니 나는 내 저녁 시간에 강아지랑 노는 게 제일 낫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기도 하다. 특별한 계기를 생각한다면 어쩌다가 알게 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다 보니, 어느새 사람에 대한 엄격한 경계심이 생기기도 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내게 잘해준다는 건 분명히 내게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기본 전제를 밑에 깐 채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사람들을 대했던 방식들을 돌이켜보면 성인군자처럼 100번을 아무렇지 않게 참다가 주기적으로 1년에 한 번씩은 어설픈 분노를 표출해버리고 만다. 아무렇지 않은 말들에 의미부여를 해버리고 그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욕을 해버리거나 소리를 질러버린다. 

아이고. 다시 생각해보니, 중간이 없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냥 소심한 인간일 수도.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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