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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Mar 14. 2022

아버지가 전하는 남자 주의사항

뉴스에서나 떠들어대는 엄마찬스, 아빠찬스의 특급기회 정도는 아니지만,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한평생 살아온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축복임은 분명했다. 이 사실들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볼 때마다 느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부모에게 왜 감사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가난’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그 가난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처절해지고 작아지는지, 그들의 어깨가 얼마나 움츠려지는지 똑똑히 보았다. 물론 내 부모에게 감사하는 건 물질적인 것에 대한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금전적인 요청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서른 언저리의 나에겐 탐탁지 않고 부끄러운 일임은 분명했다.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던 나 자신이 이때만큼 꼴 보기 싫은 적도 없었다. 20대 초반부터 아주 철저한 경제관념으로 조금씩 저축했다면 적어도 5천은 모았겠지.

 전세금 중 남은 1억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한 채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그날 바로 본가로 내려갔다. 한 상 차려진 걸 보니 엄마는 또 새벽부터 준비를 하셨을 것이다. 

 “결혼 준비는 하고 있는 거야? 언제 보여줄 거고?” 아버지도 내 안부들이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아파트까지 계약했고, 그쪽 어르신도 뵈었어요. 어머님만”

 “인사드렸어? 뭐라셔?” 요리를 준비하던 엄마도 거실로 뛰쳐나왔다. 내 입장에서 핵심은 아파트였는데, 본질이 흐려졌다.

 “그래도 좋게 봐주셨어요. 조만간 아버님도 같이 인사드릴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우리 막내 인상은 걱정 안 하지. 밥 먹자”

 식사를 들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온통 돈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의 생각들로 가득 찼다. 일단 풀어가는 과정들은 잘 헤쳐 나가겠지만, 시작이 중요했다. 그래도 죄송하고, 부끄럽다는 태도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아부지. 저 아파트 계약했는데....”

 “아 맞다. 어떻게 계약한 거야? 너 돈도 없잖아. 얼마 짜린데?” 

  순간 ‘내가 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왜 안 해?’라는 대응으로 울컥하는 심정을 대변하려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마 말대로 나는 분명히 거지였기 때문이다. 

 “.............” 

 “뭐야. 얼마나 비싸길래? 그쪽은 별로 안 비싸잖아?” 막걸리 잔을 다 비운 아버지도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억 짜린데, 사실 대출받았는데도 1억이 모자라요.”

 “몇 평? 위치는 좋아?” 

 “24평이요. 네. 위치는 직장이랑도 가깝고 딱 좋아요. 시청 옆이에요.”

 “1억이면 돼? 가전이나 그런 거는?” 

 “가전이나 나머지는 그쪽에서 준비하고 고르는 건 같이 상의할 예정이에요.” 

 얼핏 살핀 부모님의 반응은 내가 결혼 비용이 모자랄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모양새였다. 그것보단 아들의 결혼 준비과정이 예상보다 많이 진척됐다는 점에 더 놀라신 모습이었다. 

 “아들, 진짜 장가가는구먼?” 슬며시 내뱉은 아버지의 말에는 씁쓸함과 후련함이 섞여있는 듯했다. 

 “죄송해요. 모아놓은 돈도 없이 이 나이 먹도록 손만 벌리고.”

 “원래 그런 거야. 오죽하면 우리나라 결혼은 두 사람이 아니라 집안끼리 결혼하는 거라 그러지 않니.”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내 위축된 모습을 위로해주었다. 

 “그래. 그래도 서울에서 안 산다니까 막내아들이 참 효자여.” 

 “더 필요하면 괜히 마음 쓰지 말고 바로 연락해.”

 그동안 수백 번은 20대를 다시 되돌아보았고, 그동안 많은 성찰과 깨달음, 과거 내 모습에 대한 뿌듯함, 애정 등의 감정과 함께 그래도 사고 치지 않고 잘 달려왔다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후회’라는 단어는 친숙하지 않았고, 일부러 친해지려 하지도 않았다. 그 덕에 미련 없이 보낸 그때의 시기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이날만큼은 내 20대가 많이 부끄러웠고 후회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습관처럼 나온 남들과의 비교. ‘누구는 대기업 들어가서 내 나이에 2억 모았다더라’, ‘누구는 고졸이어도 성실하게 저축해서 몇 억 모았다더라’, ‘욜로(YOLO) 하는 게 인생 제대로 즐기는 것 같지? 그거 그냥 철없이 노는 것뿐이야.’ 등 누군가가 어느 한 번도 내 귀에 속삭인 흔적도 없었지만, 이때 내 귀에는 나를 비방하는 말들만 쏟아졌다. 잘 살고 있던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악성 댓글이 몇 천 개씩 달리면 이런 느낌일까. 다시 되돌아본 본 나의 20대는 엉망 그 자체였다. 그동안 내가 내 20대를 회상하면서 느꼈던 만족감은 어쩌면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혼자 만족이라도 하면서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네 엄마가 웬일로 돈을 그냥 준다고 하냐?” 아버지가 남아있는 막걸리를 내오시면서 한결 가벼운 표정과 말투들로 농담을 건넸다. 

 “누가 공짜래? 나 칠순 되면 그 뭐냐. 스포츠카. 그거”

 “페라리?” 20대 초반 때쯤, 퇴직 선물로 갖고 싶은 걸 엄마에게 직접 물은 적이 있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어. 그거 사주기로 했어. 원래 이미 받았어야 하는데, 평균 수명 길어진 걸 감안해 준거여.” 어느새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알았어요. 그때 중고도 된다 그랬잖아.” 

 “그리고 아들. 결혼하면 경제권은 와이프한테 다 넘겨. 넌 어려서부터 주머니에 돈 들어가면 다 새더라.” 

 “네.” 여자친구도 이미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뭔 할 말 없으셔?” 슬슬 식탁을 정리하던 엄마가 아버지에게 마지막 바통을 건네줬다.

 “무슨 말을 해줄까.... 술 조심해야 되는 건 알지?” 

 “네. 그럼요.” 아버지는 1년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술은 항상 조심하라고 하셨다. 아마 아버지는 내게 평생 이 말을 하실 거다. 

 “많이 다투거나 그러진 않지?”

 “네.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요.” 

 “부부가 되면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아서 다투는 건 어쩔 수 없을 거야. 그럴 때마다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남자는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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