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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Sep 21. 2023

무제

무성한 담쟁이 앞에 지친 듯 서계신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그래, 저것도 삶이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긴 머리를 팔랑거리며 걸어오는 고등학생을 보았다. 그러자니 문득 시간이 참 폭력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꼿꼿하고 팔랑거리는 아이를 어딘가 조금 신체 균형이 맞지 않아 삐딱하게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이, 폭력적일 만큼 큰 힘을 가진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다지도 큰 힘을 이길 수 있는 다른 힘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그 힘을 구태여 이겨야 할 이유는 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크게 부닥치는 힘에 깨지지 않는 법은 힘을 빼고 밀려나는 것뿐이지. 힘을 흡수해버릴 수 있는 더 큰 힘은 결국 힘빼기구나. 삶이란 이렇게도 모순적이고 그래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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