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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09. 2024

섬에 사니까 더 위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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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사방천지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살고 있다. 한 때 대한민국에 엄청난 이주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일 년 살이며 한 달 살이 대유행을 일으켰던 제주도.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에메랄드빛 바다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야자수잎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인 곳, 그래서 모두가 부러워하던 제주도.

2016년 폭설이 무자비하게 내리치던 겨울의 어느 같은 날에, 같은 부위를, 같은 병원에서, 같은 교수님께 수술받고 재활하던 중 만났던 환자동기 덕분에 얼떨결에 내 인생에서 전혀 계획에 없었던 제주도란 섬에서 8년 전 내려와 2016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살게 됐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직전에 나는 충청남도 공주에 구절산이란 작은 산 밑에서 1년 정도 한국의 전통수련방법이자 한국전통무예인 국선도 수련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20대인 내가 일명 산중생활을 하게 된 건 주위의 시선으로는 이례적인 일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아예 머리 깎고 비구니 스님이 돼서 절에 들어가 속세를 떠나 살까 하는 몸과 마음이 들만큼 지쳐있던 시기였다. 어릴 적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다사다난했던 각가지 불안정했던 환경 속에서 보낸 유년시절로 인해 오랜 시간 축적된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 불균형으로 갖가지 이상증세를 만들었고,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병들게 했다. 예쁘고 치장하는 걸 좋아하던 검은 긴 생머리인 내가 머리를 대머리로 빡빡 깎느니, 차라리 숏컷트를 치는 게 낫겠다 싶어 선택한 차선책.



나는 15살부터 거의 십여 년 간 다섯 번이나 받았던 무릎 수술로 이미 근골격계에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특히 허리에도 4,5번 사이와 2,3번 사이에 디스크와 협착증이 있었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뼈와 근육들은 무릎 연골과 연골 사이에 쿠션 역할을 하는 연골판의 형태적 기능적 이상으로 시작해, 결국 발가락부터 발목, 무릎, 골반, 허리, 목, 어깨, 등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도록 만들어 내가 진정 유기체임을 틀림없이 증명했다. 의사가 신신당부하며 말하길, 당신은 겉으로는 20대인 젊은 아가씨지만 관절과 몸은 80대이니 앞으로 평생 조심하고 아끼며 살아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몸뚱이를 안고 각종 재활치료와 운동치료를 해가며 버티며 살던 내가 결국엔 어느 날 운동하다 갑자기 갈비뼈에 금이 가더니 이내 허리가 완전히 고장 나서 걸어 다닐 수가 없었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사달이 났다. 허리에 관한 명의란 명의를 서울에서 수도권 각지마다 찾아다녀도 수술 외엔 딱히 치료법이 없었다. 몇 주치씩 약봉지가 터져나가게 지어주는 근이완제와 진통제 따위의 약뭉태기를 받아오며, 마주쳐봤자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게 없던 부모님 집에 하는 수 없이 붙어 기생해야 했다. 그렇게 꼼짝달싹 못하며 신체의 자유를 잃은 몸으로 2달이란 시간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



내 상태를 보자마자 수술부터 하자는 의사의 말을 콧방귀 뀌듯 한 귀로 흘리고, 허리만큼은 절대 수술받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냥 버티기로 했다. 이미 수차례 받은 수술과 그 수술에 따른 후유증, 수술하고 치료받는 동안의 엄청난 약물사용이 따라오는 반복된 장기간의 병원생활로 망가진 몸. 나는 병원을 몹시 싫어하게 됐고 이내 의사들을 불신하게 됐다. 처음에 분명 의사는 어린 나에게 간단한 수술이라며 일주일이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 대가로 내가 치른 것들은 10대부터 30대 후반을 향하는 지금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장애라는 짐, 찬란하던 20대의 원하고 이루고자 했던 꿈들 또는 자유와 맞바꿀 만큼 내려놓을 수 없는 수억 톤의 트럭 같은 무거운 짐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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