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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12. 2024

널 보면 부아가 치밀어

7

20년도 꽃이 만발하던 계절에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첫돌이 지난 21년도 하반기부터일까, 만족하고 행복하다 느꼈던 나의 결혼생활이 유리창에 잔금이 가듯 아슬아슬 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과 정말 많이 다투었다. 엄밀히 따지면 남편은 눈과 귀를 막았고,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친 다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남편을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속엔 순식간에 아주 뜨겁게 부아가 치밀었다.



첫째를 출산하는 과정도 27시간 진통을 했던 순탄치 않은 난산에 속했고, 난산에 따른 후유증도 오래갔다. 워낙 기저질환이 있어 그런지 나는 유독 수유하는 자세가 불편하고 어려웠다. 항상 허리, 목, 어깨, 등 그리고 특히 손목이 아파서 수유를 할 때마다 울기도 했고 많이 징징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유수유는 엄마로서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당연한 고통의 몫이었다.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 수유를 하고, 아이를 케어하느라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로 사는 것도 세상에 태어나 평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아, 육아가 이런 거구나' 하고 힘든 것을 체감하려 할 때쯤, 뭔가 느껴보려 하기도 전에 어느새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버린 육아의 초고속 시스템. 이제 뭔가 막 습득해서 익숙해지려고 하면 다른 걸 해야 하는 육아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몹시 분주했다. 모든 것이 새로워서 그런지 그다지 좋지 않은 체력임에도 죽을 만큼은 아니었고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체력적인 어려움보다 내 뱃속에서 품다가 나온 생명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낙과 보람이 훨씬 컸고, 그 기쁨은 고통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아이를 위해 매 끼니마다 유기농 매장에 달려가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최소한의 영양소 파괴를 위해 찜기에 찌고, 믹서기로 곱게 갈아 체에 거르기 바빠 다른 생각을 할 세가 없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 아이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방법들을 연구하고 만들어 먹이는 '아이주도이유식'도 겁 없이 감행했다. 하루 세끼와 간식까지 포함해 최소 4번 바닥에 온통 흘리고 쏟은 음식물 투성이었다. 모든 이유식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였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도 바쁜 와중에, 매번 그걸 닦고 치우고 빨래까지 해야 하는 무척이나 고된 일상을 살게 했다.


수면부족으로 이른 새벽에 눈 뜨자마자 수유하고, 오줌똥 기저귀 갈고, 책 읽어주고, 낮잠 재우고, 장 봐와서 요리하고, 먹이고, 치우고, 수시로 기저귀 갈고, 재우고, 안아주기. 또 놀아주고, 또 해먹이고, 또 치우고, 또다시 간식 해먹이고, 또다시 치우고, 또다시 먹이고, 또다시 치우기. 틈틈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육아정보 알아보고, 아기발달 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기저귀나 물티슈 아기 로션 등과 같이 필요한 육아 소모용품 주문하고 하다 보면 금세 캄캄한 밤이 됐다.



그러나 단순할 것 같던 먹이고-씻기고-입히고-재우는 반복된 일은 좀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수많은 규칙들과 주의사항들이 존재해 아주 복잡했다. 그 모든 것을 누가 한 번에 다 알려주지 않는 것이 육아였기 때문에, 아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학습자의 태도를 갖추지 않으면 육아는 더욱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세수하는 시간이나 머리 감는 시간도 부족했고, 나를 돌보거나 살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꿈도 못 꿨고, 밥을 챙겨 먹는 것조차도 사치일만큼 바빴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끼니를 거르느라 하루에 한 끼 겨우 먹고사는 날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열정적으로 육아에 임한 엄마였고, 육아에 진심인 "열정엄마"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타이틀에서 느끼는 소소한 만족감으로 긴 기간의 '경력단절여성', '무직', '전업주부'라는 단어들에서 찾아오는 좌절감과 괴리감들에서 거리를 두며 버틸 수 있었다.

 


고맙게도 아이는 아주 순한 기질이라 잘 먹어주고 잘 사줘서 건강했다. 흔한 돌발진이나 고열 한번 없이 무탈하게 넘어갔고, 어디가 딱히 아파서 병원을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특히 아이의 언어발달이 매우 빨랐다. 14개월쯤 무렵부터 말을 곧잘 해서 18개월에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사용하여 문장으로 말을 했다.

"아빠 브로콜리 주세요"라고. 그러다 보니 아이 스스로 원하는 걸 요구하고 얻어내고 하는 의사소통 과정이 아주 수월했다. 이전에 내가 흔히 보고 들었던 엄마들이 애를 먹으며 고생하는 장면들, 아이가 떼를 쓰고 바닥에 뒹군다거나, 밥을 안 먹겠다고 내뱉거나 생떼를 부린다거나, 옷 입기 싫다고 또는 씻기 싫다고 거부를 완강히 하거나, 잠을 안 자겠다고 투정 부리는 일과 같은 것은 나의 육아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이라 낯설고 서툴어 체력적으로 힘들 뿐이지, 그래서 첫째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일이 없었다.

"여보, 우리 집 아기 키우는 집 아닌 것 같지? 다들 헬육아, 육아지옥 이래서 엄청 겁먹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수월하다고 느끼지 않아?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어? 애 재우고 우리 둘이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게 말이 돼?"

"그렇지, 제니가 순하긴 하네."

그래서일까, 나는 최소한 돌까지는 제법 행복하게 육아에 임했고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기 시작한 걸까.

단순한 것 같아도 단순하지 않은 이 복잡한 육아의 반복된 삶은, 켜켜이 먼지가 쌓여 묵은 때가 만들어지듯 나를 지치게 했다. 구석에 가구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벽에 핀 줄도 몰랐던 곰팡이처럼, 내가 의식할 수 없는 영역에서 차근차근 때를 쌓아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심리적, 육체적 탈진 상태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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