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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ZINE

엄마 쟁취가 뭐야

2025.08.12

by 푸른청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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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늦게서야 몰아먹는 말복 중복 초복.

오랜만에 삼계탕을 끓였다. 압력밥솥에 닭 두 마리를 넣었더니 압력패킹이 잘 안 되고 뚜껑이 떠서 물이 중간에 질질 새 버렸다. 압력추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지만 맛있게 잘 끓여진 삼계탕으로 양껏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합니다.

2. 맛에 대한 탐색의 세계룰 마음껏 펼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복잡했으나 원활한 아이스크림 환불처리에 감사합니다. (블루베리타르트, 블루베리마카롱 맛, 커피맛 궁금해.. )

3. 첫째 아이와의 약속을 칼같이 지켰고, 세상 행복을 다 가졌던 아이의 표정과 미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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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를 기다리느라 설렜어. ”

차 타자마자 어제 사둔 감자대롱 과자 챙겨 왔냐는 질문을 하는 귀여운 딸내미에게 나는 오늘 개똥철학을 가르쳤다.

”세상엔 비상식적인 사람도 많아. 그냥 무조건 다 이해하고, 다 받아주고, 다 양보하면 안 돼.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고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

타당한 상황에서 네가 원하는 것은 뺏기지 마, 쟁취해야 해.”

오늘 나는 그녀를 위해 티니핑 책을 쟁취했다.

“엄마, 쟁취가 뭐야?”

“힘써서 차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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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지치고 힘든 일이 많았던 날이다.

도서관에서의 갈등은 좀처럼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잠 못 잔 채 종일 굶고, 아기를 안고 더위 속에서 똥개훈련 하듯 고생한 마음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예 날카로운 싸움닭이 되어 시원하게 개처럼 싸워볼걸 그랬나. 아이들 앞에서 상대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었고, 잘못이 없기에 형식적인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토닥토닥.


정녕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가 싶을 만큼 줄줄 새는 돈구멍을 어쩌면 좋을까? 막둥이를 위한 장난감 하나 제대로 없는 것 같은 미안함에 즉흥적으로 대여하고는 잊어버렸다. 대여기간 2주를 지나, 무려 3주나 연체해서 반납했다. 연체의 심각성을 까맣게 잊은 채 가져다주고는 무려 13,000원에 육박하는 연체료를 내고 왔다. 그것도 아이가 전혀 가지고 놀지도 않았던 장난감으로, 집 어느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으로 말이다.


무슨 교환권, 무슨 상품권, 이런 기프티콘은 몇 백 개에 육박하는 확인하지 못한 문자들과 카톡들 사이에 숨겨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버린다. 그렇게 날린 돈이 요새 수두룩하다.

5년 전에 아이 이름 앞으로 적금을 들어두고는 가입할 때 냈던 20만 원 외에 추가적으로 납입한 것이 없이 만기가 지났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그 20만 원 남짓도 찾기 위해선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도장, 신분증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만큼 분명 사전에 많이 찾아보고 비교해서 어렵사리 가입하러 갔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그리고 5년째 단 한 번도 적금 납입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현재의 내 상태를 바라보게 한다.


지갑을 두고 나오고, 나오다 도장을 두고 나오고, 나오다 휴대폰을 두고 나온다.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더위와 함께 지쳐버렸다. ADHD 증상들 중에 하나라는데, 나도 그런 걸까.

이체비밀번호가 5회 오류에 걸려 해지하려면 영업점 방문을 해야 했다. 기한을 놓쳐 소멸돼버린 금융인증서를 다시 등록하려면 이체 비밀번호에 하자가 없어야 했다. 오류가 해지되어야 금융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결국 나는 빈손으로 은행에 갔고 허탕을 치며 시간낭비를 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쌓여 가는데, 처리속도는 점점 늦어진다. 문화예술교육가는 행정까지 두루두루 다 잘해야 한다는 백령 교수님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비밀번호 찾기 하나에도 고도의 에너지를 써야 하는 피로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행정은 진짜 하기 싫은 일이다.


현실에 맞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는 요즘의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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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들과의 데이트다.

애들하고 각각 데이트만 해도 주 5일 중 3일이란 사실이 놀랍지만,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깍지 낀 손으로 꼭 부여잡고 설렘으로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니 진작 할걸 싶다.

‘엄마 조아해. 나는 가족 다 조아해. 싱혀니는 화가 나고 속상하면 울어.’

‘화가 나고 속상할 때 울어도 돼. 그렇게 마음에 솔직한 건 잘하고 있는 거야. 엄마는 행복하고 고마울 때도 울기도 해.’

’ 아니야. 안 울어. 행복은 예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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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견디고 가다 보면, 그 끝은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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