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3세, 9개월 아이 셋
주말에 아이 셋을 혼자 돌보는 날은 도망가고 싶어진다.
종일 먹이고 치우고 쓸고 닦고 씻기고, 또 닦고 치우며 허리를 굽혔는데 어느 하나 내 뜻대로 쉽게 되는 게 없다.
밥 먹어라 말 한마디도 그대로 수용이 되는 법이 없다.
짜장면을 시켜줘도 안 먹고 집밥을 줘도 안 먹는다.
가위로 온갖 것을 자르다 못해 이젠 피규어까지 자르는 아들.
사지가 잘린 새끼 흑염소 피규어를 보니 내 꼴 같았다.
피규어 이거 한 개에 얼마짜린데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와서 아들에게 인상을 썼다. ’ 얘들아 놀고 나면 정리해야지!‘ ,
’ 너희가 놀은 건 너희가 치우자!‘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조각을 줍는 건 나다. 기어 다니는 셋째가 종이를 자꾸 빨아먹어서 그냥 둘 수가 없다.
내가 먹고 싶어서 사뒀던 오미자 꽁꽁 쭈쭈바를 반을 잘라 나눠줬더니 가만히 앉아서 먹는 법이 없다.
사방팔방 돌아다닌 탓에 바닥에 온통 붉은 쭈쭈바 자국이 마치 피처럼 군데군데 가득하다. 불결한 것을 닦아내듯 빡빡 문지르며 닦으니 ’ 이제는 다시 쭈쭈바 안 줘!‘라고 인상을 한껏 찌푸린다.
분명 예전엔 ’ 흘려도 괜찮아, 닦으면 돼~ 연습하면 안 흘리고 먹을 수 있어, 같이 해볼까?^^‘라고 인내심과 미소를 장착한 친절한 엄마모드가 잘 발현됐는데, 요즘은, 오늘은 안 된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찌릿하게 짓누르는 두통이 짜증을 돋운다.
밥 먹이는데 한 시간, 치우는데 한 시간씩 걸리는 시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주말에 밀린 일을 하겠다는 포부가 가당치도 않은 현실임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지, 그저 한숨이 푹푹 나온다.
낮잠을 못 자서 피곤에 징징거리다 울음이 터진, 양치질 안 하겠다고 거부하는 아들의 얼굴을 붙잡고 억지로 칫솔을 움직인다. “엄마가 미안해, 얼른 해줄게, 얼른 하고 자자, 얼른 하고 안아줄게” 겨우 씻기고 토닥이는 사이, ‘쿵!’ 하고 소리가 난다. 자기도 재워달라 울고불고 자지러지던 셋째 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나는 괜히 옆에 있던 첫째에게 화를 낸다. “동생 안 부딪히게 잘 보고 있어야지!!”
비명 지르며 우는 셋째를 안고 달래는 사이, 엄마 손을 뺏긴 둘째는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비명과 울음과 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품에 안긴 아기를 안고 재빨리 주방에 달려가 분유를 탄다. 그 사이에 진정된 얼굴로 나를 빼꼼히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져서 아기를 본다.
아기는 배시시 웃는다.
’아휴, 진짜, 엄마 너 때문에 산다 정말. 쪽.’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고요해진 숨소리들. 피곤했던 아이들이 절로 잠들었다. 비실하고 영양가 없을 것 같은 내 젖보다 분유를 먹었으면 좋겠는데, 젖병을 입에 물리니 아기는 운다. 다시 울음통으로 자지러지는 소리가 온 공간을 채운다. 울음소리 때문에 잠들락 말락 뒤척이는 딸에게 속삭인다.
“엄마가 얼른 씻겨줄게, 씻고 편하게 푹 자자.”
재빠른 손길로 씻기고 머리를 말리는데, 바닥에 나뒹굴어진 아기는 대성통곡을 하며 나를 찾는다.
“엄마 여깄어, 엄마 언니 머리만 말려주고, 조금만 기다려줘,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필 또 드라이기가 말썽이다. 뜨거운 바람이 나와야 할 급박한 순간마다 찬바람이 나온다. 내 기필코 다이슨 드라이기를 사겠노라고 다짐하며, 딸아이 머리 말리는 장면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란 편리해질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울음의 소리가 심각해지니 아기를 얼른 데려다 품에 안고, 다시 딸아이 머리를 말린다. 품 안에 든 아기는 잠시나마 마음의 진정을 찾는다. 연신 하품을 내쉬며 “그만 말리고 싶어.”라는 아이 몸에 로션을 빠르게 듬뿍 발라주자마자 아이는 침대에 가서 잠이 들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아기는 여전히 분유 젖병을 거부하고 젖을 찾는다. 물린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만족했는지 드디어 입에서 젖을 빼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고개를 돌린다.
밤 아홉 시 반, 평소보다 한두 시간 빠른 육퇴지만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돌려야 한다. 여전히 싱크대에 설거지는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넘칠 듯 가득 쌓여있다. 종일 치우고 쓸고 닦았는데, 여전히 온 집안 바닥에는 책과 장난감부터 온갖 잡동사니가 늘어져 굴러다니고 있다.
이제 드디어 끝인가 했던 아기의 입은 다시 내 젖을 찾아 문다.
내일도 연이어 근무라는 남편의 차가운 메시지 하나, 오전에 컨설팅 일정, 그 외 처리해야 할 행정적인 일들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 같이 사는 남편의 삶은 어떠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 곁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끝없는 날들이 내 미래라면...
난 언제, 어떻게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어.
그래도, 오늘, 나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