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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10.

ep 9. 주거(living)의 변화

    런던생활 6년차의 독일친구 벤은 3년 전 런던이 독일 대도시보다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킹스크로스 북쪽의 런던 외곽지역에 빅토리아 양식의 플랫을 자가가 아닌 투자목적으로 샀다. 보통 독일에서는 집을 매매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런던은 그래도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 이 친구의 주장이다. 아뿔싸. 물론 그 친구도 이러한 상황을 예상한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인도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했기 때문에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하지만 죽는소리 해도 집값이 떨어지는 이런 상황에서 다른 투자목적의 집도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니 살만 한가 보다). 렌트비도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대폭 하락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새로 런던으로 이사오는 사람들의 수는 확실히 줄었다.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적인 불안정성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기숙사 월세다. 나는 따로 집을 얻었기 때문에 기숙사 이슈는 없었지만 다른 한국 친구들은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렌트비도 10~20% 내려갔는데 학교 기숙사비는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런던의 대학이 돈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학생이 거의 인질이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한국인 언니의 새 집에 집들이를 다녀왔다. 빅토리아 스테이션과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근처의 위치 최상의 지역이었다. 집도 넓고 아늑하면서 안전한 느낌. 집이 요즘의 최대 이슈라서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나누다가 왔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기존에 높은 렌트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많은 공용 플랫들이 비선호되고, 오히려 조금 더 돈을 주고서라도 적어도 개인 화장실이 딸린 방들이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즉, ensuite). 렌트 자체에 대한 수요는 줄었지만 남아있는 수요는 오히려 상향평준화 된다고. 재미있는 현상이다. 사실 런던의 싱글들이나 학생들 주거문화는 매우 열악하다고 본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기숙사 중에도 ensuite이 아닌 게 허다하다. 그러면서 월 150만원 정도를 내고 있어야 한다니. 코로나 방지 차원에서도, 앞으로의 복지 차원에서도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는 런던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주거공간이 정말 중요해지고 있다. 아예 외곽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젊은 층은 아직 답답해하는 것 같다. 행정구역상 런던이 아닌 더 외곽으로 나가게 될 경우 왠만하면 자가용이 있어야 마음도 몸도 편한데, 아직 면허를 취득하지 못했거나 우측에 위치한 운전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옵션도 되지 못한다. 그리고 도시가 주는 다양한 문화적 혜택과 사회적인 혜택을 무시할 수가 없다. 런던은 다양성이 빛나는 도시인데, 그 때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만약 나라면 런던 내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꼭 베네치아 바다 위의 곤돌라처럼 작은 캐널에는 긴 배가 떠다니는데 이것은 정말 주거용 배다. 런던의 살인적 집값이 만들어낸 기형적 현상이다. 배위에서 생활하는 삶이란...?

    런던도 서울처럼 스프롤링(sprawling)현상이 심각하다. 그래서 러시아워같은 경우는 런던 외곽에서 모두 지하철이나 지상철을 타고 업무중심지로 몰려들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하다. 지하철을 타면 러시아워에 까치발에 샌드백 되는 것이 기본이다. 낑겨서 목적지에서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물론 센트럴 런던은 집값이 서울 강남 저리가라 수준으로 높아서 왠만한 직장인들은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예컨대 클랩햄(Clapham), 버몬시(Bermonsey), 해크니(Hackney), 세인트존스우드(St. Johns Wood) 등의 2존(zone 2)에 위치한 구역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외곽의 구나 경기도 과천, 성남과 비슷한 집중주거지역이라 할 수 있다. 더 외곽으로는 크로이던(croydon)이나 해머스미스(Hammersmith), 리치몬드(Richmond)등 런던 중심부에서 30-40분정도 걸리는 지역까지 주거지역이 퍼져있다. 

    처음 런던에 터를 잡을 때 어디가 좋은 동네인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혹시 교통이 마비되더라도 걸어서라도 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고르고 고른 곳이 패딩턴(Paddington)이었다. 교통의 요지임은 물론이고 특히 히드로공항으로 20분만에 직행하는 히드로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가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갑자기 테러가 나서 부리나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야 한다면 여기가 센트럴 런던 내에서도 딱이라고 생각했다(정말 이상한 시나리오까지 생각했다). 패딩턴 구역 옆은 셀프리지가 위치한 런던의 압구정동 메릴본(Marylebone), 럭셔리 호텔과 브랜드가 포진한 런던의 청담동 메이페어(Mayfair), 아래로는 하이드파크, 공원을 가로지르면 명품 백화점으로 유명한 해롯(Harrods)과 런던의 서초구정도 되는 첼시(Chelsea)지구로 이어진다.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로는 패딩턴 외에도 빅토리아 역 근처, 리버풀스트리트역 근처가 있다. 여기에는 공항으로 바로 연결되는 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영국 밖으로 나갈 때도 편리하다. 


    서울 집값이 미친듯이 오른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런던과 같은 선진국의 수도들은 집값이 더욱 무지막지하다. 서울의 오피스텔 원룸 수준의, 그보다도 작은 방이 센트럴 내에 있는 기숙사들이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침실만 개인적으로 쓰고 거실과 화장실은 3명정도가 쉐어하는 주거환경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센트럴 런던은 신축과 개축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은 언제나 고정이고 수요는 많아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로나로 갇혀 있어야 하는데 코딱지만한 런던의 자취방에서는 더는 못살겠다고 생각하여 런던을 떠난 사람들도 많다. 원래 영국인들은 부모님이 있는 시골이나 전원주택으로 나가거나 아예 클랩햄이나 리치몬드쯤으로 되는 많이 떠났다. 일부 특수 직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체제로 신속히 돌입하였기 때문에 꼭 런던 중심부 근처에 살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이 점은 정말 서울과 많이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비교했을 때 재택근무를 정말 안하는 것 같다. 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아니면 근로문화가 아직 옛날식이라 그런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동안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인간간의 거리가 필요이상 가까워진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공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현대인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가 참 어렵다. 코로나를 계기로 나만의 공간과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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