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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12.

ep 12. 다시 락다운, 그리고 마침내 찾은 나의 소셜 버블

    2021년으로 이어지는 3차 락다운은 결국 사람들을 한참 무뎌지게 만든 것 같다. 설마 설마 했지만, 그게 진짜가 되었다. 그래도 이제 사람들이 첫 락다운 때 적응을 좀 한 덕분인지 사재기와 같은 패닉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영국은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세계 최초로 시작된 나라로, 2월 말 현재까지 이미 2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접종을 완료한 상태다. 그럼에도 락다운을 점진적으로 해제하는 것은 3월 8일 학교 재개를 시작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작년 락다운 해제와는 다르게 상당히 조심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많이 데여서 그런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가을학기에는 그래도 소규모 세미나는 오프라인 강의를 열었으나 이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다시 전환되었다. 가끔 미래의 교육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는데, 온라인 강의가 아무리 실감나도 대면 강의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zoom을 이용해서 강의도 하고 토론도 했고, 인터넷 상태도 좋아서 상호 연결성은 좋았지만 완전한 소통이 되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까지 전달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굳이 싱글의 삶을 청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밖에서 데이트를 하는 패턴이 정말 단순해졌다. 같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라고는 집에서 같이 영화나 넷플릭스 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락다운 초반에는 모든 박물관, 미술관, 일부 공원, 상점,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공원에 나가 산책하는 것조차 한 사람당 1시간으로 제한이 되었다. 이성을 새로이 만나고 함께 삶을 즐기는 것이 지루해졌다.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기 위한 활동(?)에도 의지와 열정이 사라졌다. 어디서 내 삶의 열정을 불지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pcr 테스트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락다운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던 그 전날, 나는 마데이라라는 포르투갈령의 섬으로 떠났다. 예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여행이라서 내가 마데이라에 가있는 동안 런던이 락다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고, 떠나자마자 영국이 자국민, 거주민의 출입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데이라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영국의 칙칙한 겨울 날씨를 피해 따뜻하고 물가도 저렴한 포르투갈로 건너온 영국인들, 영국에 직장이 있는 유럽인들도 있었고, 그들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를 같이 보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마데이라는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존을 만났다. 그는 전에 영국령의 버진 아일랜드 등 소위 말하는 조세 피난처 등에서도 변호사 일을 하다가 런던으로 복귀한 지 오래되진 않은 모양이었는데, 그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나와는 10살이 넘게 차이나는 사람이었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본인 입으로는) 말했다. 자신의 성향이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결혼하지 않고 한 평생 사는 것도 혼인 상대에게 피해주지 않는 좋은 일인 것 같다. 아무튼 그가 내 인생에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마데이라에서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몇 번씩이나 만났던 것 이외에도, 잠자리에서 어떤 것이 상대방에게 잊혀지지 않는 각인 남기게 하는가를 몸소 깨우쳐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존은 노련미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싱글이라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확인할 길은 이제 없다.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락다운 중인 런던으로 기어들어왔는데, 그 이후로는 그를 보지 못했다. 만나자는 연락은 몇 번 받았지만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여행 안에서 끝내자는 것이 나의 (이상한) 룰이기에 그것을 가능한 지키고 싶다.  

    존이 나에게 각인시킨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들은 몇 달동안 나를 괴롭혔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였다. 그렇게 락다운 속에서 또다시 홀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논문에 열중하던 타이밍에, 나는 나의 소셜 버블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를 '랑'이라고 부르겠다. 랑은 나와 동갑이고 엔지니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 중의 운명같았다. 해리포터가 '머글'의 세계에서 '호그와트'의 세계로 넘어가는 그 3/4 승강장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 상상속의 승강장은 킹스크로스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데, 원래는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여 사진 한 번 찍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곳이지만, 코로나 덕분에(?)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마침 타려던 기차를 놓친 상태였고 그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한 첫 만남 이후 나는 간간히 랑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달다구리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는 추천받은 디저트 가게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하자고 그가 제안했다. 그러자 하고, 그 당일, 그는 약속시간 한 시간 전쯤 모두 취소시켜 버렸다.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하필 약속시간이 거의 다 다가와서 취소를 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는 것이 신뢰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알겠다고 한 후 혼자 그 디저트 가게까지 가서 마카롱을 먹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건대, 그는 썸타는 여러 여자가 있는 데 그 중 다른 여자가 만나자고 했기 때문에 거기로 쪼르르 달려갔을 것이다. 내가 너 없으면 마카롱 못 먹을까. 돈도 있고 그 정도까지 찾아갈 체력도 있다 라고 자기 위로를 하며 디저트 가게까지 인생은 무상하구나 라고 느끼며 남은 주말을 보내야 했다. 

    다음날, 랑은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정말 미안하다고, 다음주에 꼭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내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다 계획한 상태였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고 심심했기에 만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는 나라는 여자 자체를 바꿨다. 

    랑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Dalston과 Kings cross 사이의 운하였다. 그는 사과의 의미로 자기가 직접 만든 작은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 

    그 다음주에도 그를 만났다. 런던에 5년 가까이 살았지만 한 번도 햄스테드를 가보지 않았다는 랑을 위해 햄스테드 히스에서 그를 보았다. 런던 외곽의 부촌, 서울로 치면 성북동이나 평창동쯤 되는 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였다.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집도 많고 산책하기에도 좋은 동네다. 우리는 만나서 이미 공원 산책만 계속 한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옵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금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같이 2인 바베큐 파티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말이 되자 정부 규제가 풀리면서 레스토랑들의 실내 영업은 제한되었지만 실외영업은 재개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된 디너 데이트도 했다. 시작은 조금 색다르고 그 과정도 엉뚱했지만 코로나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반영된 관계발전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만났고 여행도 갔고 연인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런던을 거의 떠날 때쯤이 되어서야 나의 진정한 소셜 버블을 만든 셈이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와의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락다운과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함께 지나 백신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맞았고, 서로에게 용기가 되었으며, 물리적 연결이 끊겼다 해도 서로 그 끈을 놓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위드코로나로 전환했고, 한국도 이제 위드코로나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몇 개월 떨어져서 불확실한 미래 속에 함께있는 모습을 셋팅해왔었다. 드디어 결실이 맺어지나. 그동안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결국. 

    우리는 곧 만난다. 


랑과 함께 한 첫 여행. Isle of Wight(와이트 섬)


    기회가 되면 '코로나 시대의 마데이라(Madeira)'를 주제로 한 부록을 써보려고 합니다. 3차 락다운되기 바로 전날 멋도 모르고 떠난 마데이라 여행을 하면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게 겁나서 거의 한 달 정도 머물렀던 포르투갈의 섬입니다. 혼자 떠났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얻고 그들 각자의 문화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코로나 시대의 런던(Lockdown in London)'은 12편으로 마치겠습니다. 구독하여 주신 분,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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