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 Dec 08. 2023

밥솥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을 뿐인데

우리 집 밥솥은 쿠쿠다.

밥을 하면 "쿠쿠가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라고 친절하게도 이야기를 해주신다.

새벽에 조용한 거실에서 쿠쿠가 소리를 낼 때면 나는 혹시라도 식구들이 깰봐 무음으로 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귀찮아서 그냥 사용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그 소리에 깨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다행이다.

사람은 참 간사하게도 그 소리가 그렇게도 거슬릴 때는 쿠쿠야 제발 조용히 좀 해라, 하다가도 소리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밥 물을 잘 맞추면 쿠쿠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오, 진짜? 그동안 몇 번의 뻐꾸기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밥맛이 그럼 맛있었나? 돌이켜 봐도 맛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은 후 밥물을 더욱 신경 써서 맞추게 되었다. 요즘 밥솥은 너무 훌륭해서 완벽하게 맞추지 않아도 대충 알맞은 밥이 되곤 하는데, 그래선지 밥물을 맞추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닌가.(사실 나는 식은 죽 먹기가 참 어렵던데 이런 말을 그만 쓰고 싶어도 딱히 떠오르는 다른 말이 없다는 게 나의 한계점이다.)

아이에게 쿠쿠가 밥물을 잘 맞추면 뻐꾸기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들도 밥을 할 때마다 뻐꾸기 소리 났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통 이놈의 뻐꾸기가 울어대지 않으니, 나의 요리 실력(?)에 회의를 느껴가고 있던 중, 오늘 아침 그토록 기다리던 뻐꾸기가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쿠쿠에서 뻐꾸기 소리가 났어! 오늘 밥맛은 정말 맛있을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아이들을 깨웠다.

하지만 밥은, 그냥 밥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뻐꾸기 소리의 진실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괜히 검색했다. 뻐꾸기 소리는 밥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뻐꾸기 소리는 낭설이었다. 아, 낭패다.

며칠을 뻐꾸기 소리를 기다렸는데, 진실이라는 것은 기가 막히게도 사람의 마음까지 들쑥날쑥하게 만들어 놓는 놈이다.

거짓정보였지만 잠시라도 즐거웠으니 된 건가, 이제 뻐꾸기 소리를 들어도 나는 기쁘지가 않을 테니 기쁨이라는 순간을 잃어버린 나는 조금 좌절하고 말았다.


누구나 자신이 믿는 진실 속에서 행복과 슬픔을 느끼는 법이다. 아들은 오늘 밥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뚝딱하고 등교했다.

때로는 불필요한 가짜 뉴스도 우리 삶에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은 나에게 돈을 보내고 울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