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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가득한 뉴스

신문방송학과, 뉴스의 4요소, 단신

by 헌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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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열심히 다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류상 평균을 웃도는 학점과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 출결. 무엇보다도 졸업 전에 덜컥 취업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신문방송학과였다. 어릴 적 부모님의 만류에도 예능을 꾸역꾸역 챙겨본 덕에 예능 PD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독서실에 살던 내게 가장 큰 낙은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셋톱박스에서 무료로 풀린 무한도전을 다시 시청하며 점심 만찬을 즐기는 것이었다.


박명수가 숯이 많았던 그 시절 무한도전 말이다.


직업에 대한 열망이 얕았던 탓일까. 예능 PD가 되고 싶었던 나는 갑자기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고 싶다며 홀로 디자인을 독학하기 시작한다. 학교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학과 필수 과목이었던 저널리즘 관련 수업들은 내게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단편적인 지식이 있다면 바로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4요소. 솔직히 몇 가지 요소가 있는지 헷갈리지만 발음상 '4요소[사 요소]'가 달라붙으니 이 글에서만큼은 그런 걸로 하자.


©sirui.ma

먼저, 시의성. 예능을 보다가 자막을 가리는 뉴스 속보에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다. 뉴스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한다. 두 번째, 근접성. 지방 보도국이 있는 이유다. 뉴스를 접하는 이가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 세 번째, ‘저명성’. 평범한 사람보다 알려진 사람의 뉴스 가치가 높다. 길거리 주정뱅이 아저씨의 폭언보다 고위직 간부의 폭언에 더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할 터. 마지막으로 ‘공공성’.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가 가치가 높다.


뜬금없이 이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의존한 지식을 꺼내든 이유는 지금 내 글은 누가 읽을까 하는 의문 때문. 이전에 작성하던 정보 기반의 글들은 말하고자 하는 게 선명했다. 지금의 글은 마치 과자 부스러기 사이에 숨겨진, 있을지도 모르는 트러플 조각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뉴스 가치 관점으로 보자면 평가하기도 난감한 이야기.


시간이 지난, 당신과 전혀 밀접하지 않은, 어느 평범한 20대의, 사회에 미칠 영향 따윈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난 그런 헛소리를 좋아한다.


너무나 사소해서 존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헛소리.


거대한 우주의 세계나 광활한 대자연을 떠올릴 때면 작디작은 나라는 존재가 품는 근심을 별 거 아닌 조각으로 만들어준다는 지인의 말. 반대로 입 밖으로, 혹은 활자로 태어난 것이 기적이라고 할 법한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제 몫을 다하고 머릿속에 은은히 맴돌 때면 인생 참 별거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글이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인생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는 글. 그런 의미로 오늘 당신에게 이 글이 아니면 평생 마주하기 어려운, 운명적으로 문장으로 잉태된 내 헛소리를 소개한다. 단신 뉴스 비슷한 형식을 따라봤다.


©Netflix
지난 2월 건강 검진 결과 담낭용종이 발견되었습니다. 다행히 5mm 이하의 크기이기에 6개월 간격으로 초음파 검사를 통한 추적 관찰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과를 접한 애인의 기름기 적은 음식을 먹으라는 잔소리에 성인 10명 중 1명이 있는 증상이라고 답했지만 돌아오는 건 매서운 눈초리였습니다.


작년 10월 구매했던 나이키 주식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나이키가 망할 리가 없다며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말했지만, 지난 2개월 간 시름시름 앓던 주식. 이제야 기를 펴고 일어났습니다. CEO가 바뀐 나이키, 범고래가 날뛰던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씩식이’, 이번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씩씩한 식물의 줄임말인 ‘씩식이’라는 예명을 가진 아스파라거스계 식물은 겨울 차디찬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잎을 우수수 내뱉었습니다. 식물 애호가인 어머니 친구의 조언에 따르면 분갈이 이후 뿌리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푸르던 잎은 점차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꽃집 사장님은 구매 당시 이 종을 죽이는 손님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1호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전주 고속 터미널에서 동서울 터미널로 오는 버스 안 높은 온도에 멀미를 호소했습니다. 바닥에서 나오는 엔진의 열기는 발을 데웠고, 그 열기는 점차 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엔진 열기로 고통받는 22번 자리는 일반 자리에 비해 저렴하게 팔아야 되는 건 아닌지 건설적인 해결책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 아무거나 추천합니다

©29CM

카펙 아바카 콘 필터

오래 살아남은 취미 중 하나인 필터 커피 추출. 실력이 느는 것 같다가도 약배전 커피의 느린 물 빠짐을 마주하게 되면 작아지곤 한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느린 물 빠짐을 바로 해결해 준 '카펙 아바카 콘 필터'. 추출 속도가 다른 필터에 비해 확실히 빠르다. 분쇄도를 굵게 하자니 커피 농도가 옅어지고, 느린 물 빠짐을 기다리자니 클린컵에서 멀어진다. 이 고통스러운 딜레마를 아는 자가 키워드를 따라 이 추천에 도달하기 바라며. 한 번만 써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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