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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May 10. 2024

자리

2022년 12월 6일

“네가 언젠가 나처럼 책임 있는 자리에 오게 될 거야 “


술에 취한 한 선배가 말했다. 그는 최근 입버릇처럼 후배들에게 선배의 덕목은 무엇인가에 대해 부쩍 강설하고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싹한 감정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는 후배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투영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그 모습에서 어떤 행복한 미래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야’.


가끔씩 나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까지 가는건지 모를 때가 있다. 나만 그런 걸까. 그러면 도대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건 길을 잃었다는 뜻이 된다. 그가 미워서 그런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돌아오는 길엔, 북받쳐서 나즈막히 읊조렸다. 아무래도 아니라고. 언젠가 이런 문구를 일기장에 써둔 걸 발견했다.


"남에게 평가받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이제는 알겠어요. 그건 미움받을 용기를 내지 못해서 그래요. 때로는 뇌를 꺼내서 락스물에 담그고 싶어. 내 자신을 차가운 얼음물에 처넣는 거지. 그러면 이 질척이는 미운 감정도 씻어낼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잠깐이라도 삐끗하면 안 될 텐데. 그동안 이루고 누린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 거 같은데. 나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감히 누굴 책임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길을 여전히 헤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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