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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Dec 24. 2023

부와 가난이 극과 극을 이룬 도시 LA

기억 속의 서울을 사는 유목민이 되어

가끔씩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향수병 비슷한 발작 증세다. 그럴 땐 여지없이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가서 눈팅을 하다가 오천 원짜리 티셔츠나 꽃을 한 다발 사고 혹은 교보나 영풍문고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며 한국어로 된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과거 그냥 일상이 무료해지면 우리 동네를 걸으며 소소하게 즐겼던 일들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혹은 교보나 영풍문고가 여전히 예전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기억 속의 그곳 서울거리는 설사 혼자 밤에 길을 걸어도 위험하지 않은 정겨운 도시였다. 지금 사는 이곳과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만 킬로가 넘고 서울거리를 무작정 걸었던 소소한 즐거움은 이젠 일상의 많은 것들을 희생시키고 큰 맘을 먹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나들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향수병 발작이 와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충동적으로 서울 같은 도시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곳이 때로는 주말엔 뉴욕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땐 퇴근하고 워싱턴 디시 시내를 무작정 돌아치다 어둑해져 귀가하면 남편에게 한방 핀잔을 먹기도 한다. 남편이 걱정하는 이유는 늘 똑같다. 미국의 어느 도시도 서울만큼 안전하지 않으니 절대로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는 건데 사실이 그렇기에 어떻게 변명할 여지도 없다. 무엇보다도 뉴욕이건 디시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불쑥불쑥 느껴져 기억 속의 서울만큼 다정하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이번엔 서울과 비슷할 것 같은 LA의 코리아타운을 가서 한국어로 된 책도 사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여전히 다섯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수고를 거쳐야 했지만 그래도 서울보단 가깝고 적어도 이십 년 전쯤 기억으로는 내가 사는 이곳보다는 더 많이 서울을 닮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7일간의 일정으로 찾아간 LA도 헛헛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기억 속의 서울만큼은 아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자와 노숙 텐트들 그리고 구석구석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 코리아 타운의 그런 모습에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우울하고 아픈지 모르겠다. 사실은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고 싶은 엄두조차 내지 못해 한국 서점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맛집이라 소문난 북창동(BCD) 순두부찌개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두 시간을 기다리다 진을 빼서였는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라라 랜드 영화 속의 미아와 세바스찬이 애잔하게 만나 데이트를 한 그랜드 센트럴 푸드 마켓(Grand Central food market)도 지저분했고 맛있다고 소문난 인 앤 아웃 버거도 그저 그랬다. 한때 무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배를 채웠다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83년 전통의 Pink's hotdogs를 먹기 위해 할리우드 뒷거리를 걸어갈 때는 쓰레기 가득한 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자들과 요란하고 위협적인 문신과 복장을 한 흑인과 스페니쉬가 사실은 너무 무서워 몹시 긴장을 했다. 결국 별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핫도그를 먹고 다시 걸어올 용기가 나지 않아 차를 주차해 놓은 일 마일 거리를 우버를 불러 타고 왔다. 그런데 택시운전사마저 여기 할리우드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노숙자들에게 셀폰과 지갑을 소매치기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단다. 영화 속이나 유튜브 영상 안에서 반짝이던 할리우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겠지만 부와 가난이 극과 극을 이루고 온갖 행과 불행이 묘하게 뒤엉켜있는 도시가 LA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야 화려하고 멋지겠지만 할리우드 부자들만 산다는 비버리 힐즈도 그냥 좁고 꼬불꼬불한 산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운전하기 불편하고 힘든 곳에 위치한 언덕 위의 동네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에피소드 형사 Bosche가 살던 낭만적인 집을 추구하기엔 하늘보다 높은 가격 때문에 현실과 이상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다정한 서울거리를 그렇게 찾아 헤매다 기억 속의 도시를 유랑하는 유목민이 된 채 집으로 돌아오니 슈트케이스 속엔 그렇게 사고 싶던 한국책은 없고 세탁기에 돌릴 빨래만 가득하다.   




말리부 해안. 말리부해안도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 이젠 하나도 안 멋있다. 멋지게 찍을라고 무척 노력해서 한컷 ^^;;
말리부 해안의 새. 그래도 파도와 바닷 새는 한결같이 멋있다. 
할리우드 다운타운
도로 타일에 유명 영화배우들 이름을 이렇게 새겨 넣었는데 트럼프 이름도 있다. 트럼프도 스타는 스타(?)인가 보다. 
배달 로봇
넷플릭스 기념 상점 90프로 이상이 한국 영화 기념품이다. 오징어 게임 섹션.
83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Pink's hotdogs식당
냉동 어니언 링과 감자를 튀기지도 않고 무슨 기계에 넣었다가 주는데 보기만 그럴싸하지 별로 맛없다.
할리우드 다운타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프로테스트가 있어 시끄럽고 복잡했다.  
비버리 힐즈의 어느 영화배우 집일지도 모르는 언덕 위의 집. 
비버리 힐즈에서 본 일몰 시의 LA 야경. 영화 Bosche에서 이런 야경이 자주 나와 LA가 막연히 서울과 같을 거라고 착각했다.
북창동 순두부
순두부와 콤보로 나온 갈비
해물파전
코리아 타운은 우울해져서 일부러 안 찍었는데 노숙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한컷 찍었다. 근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여기도 노숙자가 있다.
그리핀 천문대
영화 라라랜드에도 나오는 Pendulum
실제 주기적으로 별을 관측하는 허블 망원경. 이번 LA 여행해서 이걸 본 게 제일 맘에 들었다. 
영화 Bosche에서 총격 살인이 일어나 보쉬가 열심히 총알을 찾아 헤매던 Angels Flight. 타고 올라가는데 1달러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애잔하게 만나 데이트한 Grand Central food market. 실제는 하나도 안 멋있고 지저분하고 복잡하다.
LA 박물관 입구. 12 간지 동물상을 쭉 돌아가며 세워났다. 
무슨 Fabric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음. 내 눈엔 그냥 마네킹.
여러 사람이 이렇게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벽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Palos Verdes Estates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내 눈엔 이 해변이 말리부보다는 백배 더 조용하고 멋있다.
Palos Verdes Estates 해변의 등대
9살 되었다는 거북이
Palos Verdes 해변의 새
Palos Verdes 해변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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