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쓴 동화가 있다. 2008년 <눈물상자>, 2002년 <내 이름은 태양꽃>을 사고 보니 한승원 작가의 동화도 있다. <우주 색칠하기>, <어린 별>을 사니 황석영 작가의 2001년 <모랫말 아이들>이 보인다. 결국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여남은 권 산다.<세상이 앉은 의자>는 의자라는 소재에 끌리고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은 제목에 끌린다.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이 1995년 문학동네가 출판한 어른을 위한 동화 시리즈 제1권이고 2009년 <나비>가 마지막 출판인 것 같다. <당나귀~>는 괴테가 극찬했다는 풍자성이 시원하고 한강은 역시 묘사가 깔끔하고 삽화도 산뜻하다. 한승원 동화는 교훈성이 짙지만 황석영의 서사는 그림이다. 긴장하지 않고 읽기에 적당해서 절판된 작품들은 중고매장을 훑으며 계속 구한다.
시리즈 중 안도현의 동화가 네 편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시인의 동화 <관계>를 책장에서 찾아낸다. 1판 21쇄 2002년 판이 20년 넘게 나와 관계를 이어온 셈이다. 아주 미미하지만 묵은 관계이다. 우리가 서로 버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아 20여 년만에 펼치니 20년 전의 나를 만난다.
<관계> 속 '푸른 목숨'은 나무 이야기이다. 감이나 대추를 낳지 못하는 미루나무, 느티나무처럼 그늘도 만들지 못하는 멀쑥한 나무를 청년이 자른다. 실개천에 놓이는 외나무다리가 될지, 무거운 빨랫줄을 받치는 바지랑대가 될지 미루나무는 주도권이 없다. 청년의 어머니가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다 가는 새끼줄을 감아서 어린 미루나무에 묶어 준다. 죽은 나무와 살아 있는 나무 사이를 푸른 목숨이 오고 간다.
바지랑대, 정겹다. 이우근의 '바지랑대'를 읽는다.
~산다는 것은 안과 밖이 없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이다.
빈 마당을 지키는 바지랑대처럼
다소 꼿꼿하게
견디는 것
누군가를 떠받치며
우리는 빨랫줄처럼 약간은 휘었지만
대체적으로 수평적이게.
나는 과일나무도 아니고 튼실한 목재도 아니다. 일흔은 할멈이 올려보고 꿈꾸는시간도아니다. 이제 구순을 버티는 어머니의 바지랑대가 된다. 빈 마당을 지키는 바지랑대가 빨랫대를 받치듯 나는 어머니의 바지랑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