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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08. 2024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최근 구매한 아이패드가, 필자의 일상 속 시간소비에 있어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올해 7월, 회사에서 교과 과정을 수행 한 뒤 받은 격려금으로 구매했던 아이패드,

 

 이번에는 예전에 갤럭시나 샤오미와 같은 제조사 모델을 구매할 때 썼던 11인치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아예 큰 사이즈로 구매를 하여 유튜브 머신도 좋고, 또 현재 타이핑 중인 브런치 스토리를 작성할 때도 사용하고, 추가로 현재 구독 중인 전자책 플랫폼을 활용하여 독서도 해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다소 생뚱맞지만,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활용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 한 구매 이유 4가지 중에, 3가지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유튜브 보고, 웹서핑 하고, 전자책 읽고, 사실 앞서 열거한 3가지 정도만 잘해도 태블릿 류의 장치를 사용함에 있어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이마저도 사실 거의 못해서 초기 한 두 번만 활용되다가 결국 장롱으로 직행하거나, 운이 나쁘면 케이스가 끼워진 채 "라면 받침"으로도 사용이 된다고 하질 않던가.


 필자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마흔이 다되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어릴 적, 나는 미술시간이 그렇게 싫었다. 같은 예체능인 음악과 체육 시간은 정말 너무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미술시간만 되면 심박수가 올라가고 선생님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랄까? 스케치도 못했지만, 채색도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스케치는 보고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피사체의 비율을 잘 캐치하지 못해 그리지 못했던 거 같고, 채색은 파렛트에 물을 넣고, 색의 농도를 조절하고, 원색을 섞어서 스케치된 영역 안에 잘 그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맨날 하늘색은 하늘색이요, 나뭇잎 색은 녹색으로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매년 봄, 사생대회를 가는 날이면 정말 토가 나올 정도였다. 평소 학교에서의 미술 시간은 한 시간만 버티면 종이 울려 수업이 끝나곤 하는데, 사생대회는 "미술"이 메인인 하루였다. 하루 종일 도망을 다닐 순 없어 내 나름대로 스케치북에 연필로 나무와 꽃을 열심히 그려도, 친구들이 비웃고 놀리는 통에 영 붓을 들 힘이 나질 않았다.


 어느새,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제 곧 수능을 보니까... 미술시간은 크게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담임선생님께서 미술선생님이셨다. 나는 정말 미술시간마다 도망 다니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도망 다니는 걸 아셨는지, 맨날 나보고 '그림 좀 보여줘'라고 지시하셨었다.

 그로 인해 보여주기 싫은 나의 그림들을 억지로 보여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날은, 반에서 가장 못 그린 그림 5작을 전시하면서, 이렇게 그리면 안 된다고 하셨었는데, 거기 당당히 내 그림(?) 이 들어가 있었고, 정말 그날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토록 원하던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미술이나 수학을 배우지 않아도 혼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나 스스로 잘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과 그 당시의 아쉬움이 아직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비록, 지금도 보고 따라 그리기는 여전히 못하지만, 이미 그려진 사진을 보고 선을 따라 그리고, 그것에 맞춰 채색을 할 수 있는 라인 드로잉은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내가 못한다고 하여 나에게 평가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 당시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이미 내가 운전하고 있는 버스에서 내리신 지 한참 전이다. 그리고, 현재 함께 버스에 탄 승객들 중,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한다고 하여 나의 그림을 안 좋게 평가할 사람도 없어 보였다. 나는 어릴 적 들던 연필과 붓대신 애플 펜슬을 잡고 선을 집중해서 따라 그려보기 시작했다.


 유튜브 등에, '라인 드로잉'이라고 검색하면 상세한 설명이 나온 튜토리얼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연필 스케치나 채색 원리를 공부했어야 하지만, 지금은 드로잉 앱의 사용법만 익히면, 앱에서 그림에 대한 많은 부분을 도와주고 있어 한결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사실 몰랐다. 나에겐 늘 언제나 초조함을 가져오고, 혼나진 않을까, 비웃음 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득했던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즐기면서 취미를 해 볼 수도 있게 된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에 공감한다.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 다시는 미술을 안 해도 되어 기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비록 기계의 힘을 빌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과거를 딛고 해내려는 시도를 하게 될 줄 몰랐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더 그려보고, 여러 튜토리얼들을 보면서 그 영역을 확대해 볼 생각이다.


P.S 지금의 어려움도, 나중에는 다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하는 시절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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