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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25. 2024

빛담의 필름로그 -3, 암사동

 글을 작성하는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이다. 

원래 장대(?)한 계획으로는, 가족들과 어디 놀러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들 요새 유행하는 독감으로 몸이 좋지 못해 올해는 소소하게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사실, 휴일 어디 이동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휴일이 되면, 모든지 비싸지기 때문이다. 행선지로 가는 시간도 비싸지고, 행선지에 도착해도 대기시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평소보다 비싸다. 

 그러나, 평일에 이동한다면 가족 구성원들과 시간을 맞추고 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 부분도 만만치 않다. 


 결론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건강할 때 가면 되는 거 같다. 이것저것 맞추다 보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여하튼, 서론이 매우 길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나 홀로 카메라를 목에 메고 문 밖을 나오게 되었다.


#1. 2024.12.24 암사동, FUJI X100VI

 오늘 출사의 행선지로는 '서원마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곳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주택 단지로서 멀리 가지 않아도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동네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동네는 일반 빌라촌이 아닌 주택 단지로서 차고지도 집마다 존재하고, 도로도 넓어 산책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행선지로 향하던 도중, 웬 청 테이프를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전단지를 붙이고, 그 전단지만 떼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는 바람에 청테이프만 홀로 본인이 있던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누가 붙이고 간 걸까? 아니야, 누가 수거해 간 걸까?'

'어떤 내용의 전단지가 붙어있었을까?' 

 저 초록 테이프의 밑면에 붙어있던 전단지의 광고 내용과 더불어, 과연 누가 종이를 회수해 갔는지, 한참을 서있다가 셔터를 누른 사진이었다.


 크게 별거 없는 사진이지만 괜스레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시작보다는 마무리가 중요한 거 같다는 깨달음이 드는, 그런 장면이었다.


#2. 2024.12.25 암사역사공원, FUJI X100VI

 집을 나와 약 오분 정도 걸어갔을까, 이제는 지하철 공사가 완전히 끝나 주변 도로가 다시 잘 포장되어 있는 암사역사공원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곳을 지나갈 때 쓰여있는 공원명 조형물을 지나가다 보니, 위 사진에서 처럼 딱 저 부분에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24.10.22, 13.10.??' 대부분 숫자, 혹은 날짜 형태의 낙서들인데,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한 명이 이러한 낙서를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서체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왜, 우리도 어딜 가나 낙서를 자주 하곤 하지 않았는가.(나만 그러한 건가?) 그런데, 보통 낙서할 때는 내가 누구고 언제 여기 왔다 간다. 라든가 내가 누구누구랑 사귄다던가 하는 자랑글을 적어 놓는데, 저 낙서는 도통 의미를 모르겠단 말이지...


 '저 낙서 마저, 존재의 이유는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담고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3. 2024.12.25 암사역사공원, FUJI X100VI

 세 번째 장면은, 필자가 사진기를 들고 갈 때 항상 눈여겨보는 노란색 마을버스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을버스 앞쪽과 옆쪽에는 보통 하나의 업체에 대한 마스킹이 되어있던 거 같은데, 요 근래에는 앞에는 'OO유치원' 옆에는 'OO동 어학원'등, 멀티로 마스킹을 하여 두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아마도 버스들의 '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그러한 방법을 쓰는 거겠지. 어른이 되면 사소한 것에도 '이유'를 생각하게 되어 슬플 때가 있다.


 해당 피사체를 처음 접한 뒤, 노란색 버스만으로도 너무 이쁜데, '어린이 정지 승하차'라는 붉은색 안내 표지도 정말 예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킬링 포인트는 사진의 가장 가운데에 있는 '윙크'하는 이모티콘 모양이 아닐까? 


'빛담, 너도 좀 웃어봐. 평상시 잘 웃지도 않잖아. 나처럼 말이야 ^^' 라며 왠지 나를 위해 이곳에 주차해 둔 노란 버스는 아니었을까? 아주 잠깐이나마 사진을 담은 뒤, 불투명 버스 유리창 앞에 서서 저 윙크하는 표정을 따라 해 본 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황급히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4. 2024.12.25 서원마을, FUJI X100VI

 네 번째 사진은, 서원마을이라 적었지만 사실 서원마을까지 가려면 약 5분은 더 걸어가야 하는 그런 위치에서 담은 사진이다.


 주변에 민가가 듬성듬성 분포하고 있어 밤이 되면 걸어 다니기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다소 을씨년스러운 동네였는데, 이러한 곳 까지도 쿠팡은 자리를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필자의 경우, 쿠팡의 등장으로 인해 대형마트에 차를 몰고 장을 보러 가는 일이 거의 없어진 듯하다.

사실 쇼핑을 하면 필자나 필자의 와이프 모두 진을 빼는 스타일이다 보니, 다들 하나씩 갖고 있다는 그 흔한 코스트코 멤버십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생필품 공급에 크게 애를 먹지 않고 있는 건, 집으로 찾아와 주는 서비스인 쿠팡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쿠팡이 없는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돌아갈 수는 있을 텐데,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답을 할거 같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까지 찾아와 생필품을 직접 배송해 주고, 심지어 반품 수거까지 해주는 서비스, 2024년 현재 우리는 쿠세권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5. 2024.12.25 서원마을, FUJI X100VI

  네 번째 사진을 담고, 서원마을로 들어가려는 찰나에 마주친 사진이다. 

피사체를 본 순간, '사람의 눈'이 자연스레 생각나며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한 사진이었다.


 찍고 나서 필름로그를 작성하며 다시 살펴보니 심지어 한쪽 눈은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고, 다른 쪽 눈은 그렇지 않은 것도 무척 귀여운 것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게 되면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헌팅하기 위해 집중력이 더욱더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작업 모자인데 말이다. 그래서 사진에는 평범한 피사체를 비범하게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6. 2024.12.25 서원마을, FUJI X100VI

 오늘의 행선지인 서원마을에 도착했다. 처음 와본 곳이 아니기에 필자에겐 너무나도 익숙했다. 

언제나 예쁜 우체통 사진도 담고(이곳에 오면 늘 담아가는 편이다), 예쁜 골목길도 수평을 잘 맞춰 담아본다. 하지만 익숙하고, 이미 한번 이상 담은 피사체들만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서원마을 외곽에 위치한 '정향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위에 올려둔 재밌는 피사체를 발견하고는 시선과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분명 저 왼쪽에 위치한 새 모양의 석상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거 같지는 않은데 흡사 꽃다발을 들고 오른쪽 석상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자세히 보니, 석상들의 고개가 서로 돌아가있구나...' 사진을 찍을 땐 재밌는 피사체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와서 결과물을 살펴보니 조금 아쉬운 서사를 가진 피사체였다. 


 그럼에도, 뭔가 저 중간에 우뚝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왼쪽 석상이 의도한 듯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필름로그로 한번 가져와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어 한껏 피로감이 덜했다. 

오늘도, 결국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어디론가 향한 보람을 느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일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우선 시작해야 진행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이 제일 어렵지... 


 그렇게, 오늘도 몇 장 되지 않는 필름의 결과물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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