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갱현 Mar 11. 2022

커져가는 내면의 폭풍에 대한 답

Royal Blood - <Typhoons>

Before <Typhoons>


    로열 블러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기억한다. 오래간만에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는 흥이 절로 나는 리프의 곡들. '세련'되었고 '고전'적인 록 음악. 빈틈없이 꽉 찬 사운드. 항상 같이 연주되는 기타와 베이스 사운드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보를 찾아보니 역시나 이들은 2인조 밴드였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와 톡식으로 2인조 밴드의 음악을 들어왔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사운드는 그것들과는 다른 포지션에 있었다. 사이키델릭처럼 몽환적인 느낌보다는 직선적이고 거친 그런지 사운드에 가까웠다. 보컬 겸 베이시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마이크 커(Mike Kerr)와 드러머 밴 대처(Ben Thatcher)의 합은 '무결'에 가까웠다. 데뷔 앨범이었던 <Royal Blood>와 이전 <How did We Get So Dark?>를 들으며 사운드가 비어있어서 새로운 멤버가 꼭 필요하겠네! 같은 일말의 생각들도 들지 않았다.


    마이크 커는 2019년까지 술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삶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느 때와 같이 바에서 술을 마시던 그는 자기 자신의 삶에 스스로 불평하는 것이 지겨워졌고, 이내 밴드 Queen Of The Stone Age의 Josh Homme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폭풍 같았던 중독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수록곡 'Boilermaker'를 만들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In <Typhoons>

    

    바뀌었다. 'Trouble's Coming'을 들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리듬과 사운드 소스는 댄스 음악에 맞게 변화했고 기타 톤은 자연스러운 배음을 가진 그런지 사운드에서 Super Saw Synth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특별한 배음을 가진 퍼즈 계열 게인 톤으로 바뀌었다. <How did We Get So Dark?>에서 아쉬웠던 점은 보컬 멜로디를 강조하다 보니 악기의 사운드가 이전 앨범보다 한 발 뒤로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1집만큼 강렬한 사운드를 기대했던 팬들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달랐다.


    음악의 텐션을 훌륭하게 유지하는 것이 놀랍다. 오히려 적절한 브레이크들이 감상의 재미를 높인다. 다음 곡이자 앨범명과 같은 이름인 'Typhoons'에서 마이크 커는 자신의 술과 관련된 경험을 녹인 가사로 건전함(?)을 추구하자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화학물질(알코올 혹은 마약이 될 수도 있다)이 부르는 이 폭풍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사운드는 상황에 대한 불안보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앞서 등장한 'Boilermaker'의 가사들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폭탄주(Boilermaker)를 소재로 술에 중독되는 것이 어떤 일을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특히나 간주 부분에서의 F1 레이싱을 연상시키는 이펙팅은 폭풍같이 혼란한 상황을 그려주고 보컬 코러스는 더 많은 폭탄주를 원하는 내면의 타락한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k9SQ2xfHEiM

Royal Blood - Typhoons (Official Video)

    정교한 믹싱의 디테일도 이 앨범을 감상하는 큰 재미를 준다. 기본적으로 모든 곡에서 훌륭하게 맺히는 메인 악기들의 음상과 각종 노이즈, 이펙트는 그야말로 명품 조연이다. 'Million and One'처럼 패닝을 활용한 신스 사운드(트레몰로를 활용한 기타 사운드일 확률이 더 높다)를 듣는 재미나 이어지는 'Limbo'의 인트로에서 등장한 소리들이 그렇다. 특히나 이 곡에서는 신스팝의 기조를 보이는듯한 사운드가 인상적인데, 스타일을 바꾸면서도 본인들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유지하는 모습이 놀랍다. '락'에만 치중하지 않은 시도가 엿보인다. 모든 곡에서 한 가지의 기타 톤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각각 다른 콘셉트를 보여주는 다양한 톤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Mad Visions'는 기타 톤의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곡이다. 전자음을 닮은 기타 소리는 무거운 톤의 벤 대처의 드럼 사운드와 아주 잘 어울리며 'Give me mad Vision'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후렴의 리프는 로열 블러드의 음악이 왜 매력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그대로 답하듯 전율을 선사한다. 'Hold On'에서는 기타 사운드의 저음을 다른 곡들보다 많이 줄여 라디오를 듣는 감상을 전한다.


    마지막 곡 'All We Have Is Now'는 기타와 드럼이 없다. 앨범의 주제인 '폭풍 같은 중독'이 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 뒤 마지막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듯하다. 사이렌 소리와 겹치는 고조되는 건반은 그대로 사라지며 이 앨범은 '열린 결말'임을 알린다.


After <Typhoons>


    2017년 이후 팝 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레트로'와 '신스 팝'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들이 점점 많아졌고 기타리스트들도 우리가 알던 하이게인을 이용한 플레이어들보다 톰 미쉬(Tom Misch)나 크리스찬 쿠리아(Christian Kuria), 코리 웡(Cory Wong)같이 크런치, 클린 톤을 이용한 플레이어들이 뛰어난 실력과 음악성을 바탕으로 차세대 주자로 나섰다. 그들처럼 대세의 반열에 올랐던 베테랑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멋진 음악들을 만들었지만 유행은 항상 변화하기에 메인으로 나설 주기를 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로열 블러드는 이런 상황에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개성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탐구를 놓지 않은 노력을 <Typhoons>를 통해 그대로 표현했다.


    '락 밴드'의 구성에는 확실한 한계가 존재한다. 드럼, 베이스, 기타, 많게는 건반까지 포함한 그 구성은 그들의 음악의 본질이지만 큰 한계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쓰지 않던 악기들과 전자음을 사용하기에는 커다란 모험을 해야 한다. 이 모험 속에서 <Typhoons>는 많은 뮤지션과 리스너들에게 폭풍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기 속에서 락 뮤지션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불을 비추듯 등대의 역할을 한다.




TRACKLIST & RECOMMENDED


01. Trouble's Coming

02. Oblivion

03. Typhoons

04. Who Needs Friends

05. Million and One

06. Limbo

07. Either You Want It

08. Boilermaker

09. Mad Visions

10. Hold On

11. All We Have Is Now

12. Space (Bonus Track)

13. King (Bonus Track)


발매일 : 2021년 4월 30일

재생 시간 : 38분

레이블 : Warner Music UK and etc.


4.0/5


작가의 이전글 한 곡씩만 찍먹 해볼까?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