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 그대로, 밝게 빛나고 싶다.
2021.10.10.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
배우: 정연
처음 이 작품을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뮤지컬 <포미니츠> 때문이었다. 포미니츠는 피아노의 매력을 극대화시켜주었고, 배우만큼이나 연주자가 무척이나 강렬했던 작품이었다.
이후, 악기를 소재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를 만나게 되었다.
소극장 1인극이라는 점도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여성 1인극이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설레게 했다. 두 명의 남자 배우가 추가로 캐스팅되었지만, 처음은 꼭 여성 서사로 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캐스트는 정연 배우이다. 연극 <완벽한 타인>,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 이렇게 올해만 세 번의 작품에서 나는 정연 배우를 선택했다. 실력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사랑하고 상처 받고 다시 일어서는 30대 유지원은 정연 배우가 가장 잘 표현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대부분의 공연은 시작 후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만 환한 조명을 받아 빛이 난다. 하지만 <웨딩 플레이어>는 달랐다. 객석은 그 자체로 밝았으며 무대 위의 유지원과 관객들은 함께 소통하며 이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공연의 중반부까지는 뮤지컬보다는 피아니스트가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무대가 꾸려진다. 극 중 웨딩 플레이어인 유지원은 결혼식에서 사용되는 클래식 곡들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관객과 소통한다.
개인적으로 클래식을 무척 좋아해 토크 콘서트를 자주 가는데, 얼마 전에 다녀온 바이올린 연주자의 토크 콘서트에서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적이 있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를 보시기를 추천한다.
극 중반부 이후로 유지원의 과거와 관련된 아픈 서사가 펼쳐진다. 어릴 적 친구를 따라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던 음악과 피아노,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지원해주고 싶었던 아버지. 그녀의 아버지가 소중하게 아끼던 전축은 그녀의 그랜드 피아노가 되었고, 아버지의 고된 세월은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유지원은 좁은 방에 살면서도 피아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피아노 아래에서 새우잠을 자도 그녀는 행복했다. 그런 피아노를 두고 사랑하는 남자와 갈등을 빚으면서 그녀는 사랑보다 피아노를 선택하게 된다. 결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꿈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현실에서도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피아노는 그녀의 행복이었으며, 불행이었다.
비슷한 경험 때문인지 무척이나 공감되는 유지원의 말과 감정이 매 순간 내 가슴을 치고 갔다. 객석이 밝은 공연인 데다 하필 1열 중앙에 앉는 바람에 배우의 몰입에 방해될까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눈물이 흐를까 봐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선택한 그녀를 위한 아버지의 희생, 사랑하는 남자에게 상처 받았던 과거,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 그렇게 열등감에 파묻혀 도망치기를 선택했던 유지원.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국, 유지원은 외면하고 싶었던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행복하기를 선택한다. 나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응원한다.
지원아, 다시 웃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