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햇살과 춤을 추는 한 마리 작은 나비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바이런의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했기에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1819년 4월 1일 저자의 동의 없이 뱀파이어 소설이 발간되면서 시작된다.
처음 만난 창작 초연은 역시나 불친절했다. 실제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라 대사들이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인물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배경지식이 없이 관극을 한다면 서사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원작과 실존 인물들에 대해 알고 작품을 감상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놓치는 부분들이 많았다. 보통 작품 리뷰는 중반부가 넘어가는 시점에 작성하는 편인데 이렇게 개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리뷰를 작성하는 이유는 앞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될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작품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서이다.
바이런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표현력으로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었다. 항상 스캔들이 그를 따라다녔으며 실제로도 문란했던 그의 사생활은 끔찍한 소문들을 만들어냈다. 바이런은 소문을 피해 여행을 떠나는데 이때 주치의로 존 폴리도리를 고용해 동행하게 된다. 극 중에서도 소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바이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유명세 뒤에 가려진 고통을 잘 그려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극에서 디오다티에서의 일화를 언급한 부분이 굳이 필요한 서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품을 보고 나니 디오다티는 관객을 위해 넣은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더 테일의 서사는 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에게 어려운 작품이다. 아마 작가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작품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고자 하지 않았을까. 원서를 읽어 보면 디오다티에서 더 테일의 무대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약, 테이블 위에 놓인 약병, 촛불 아래 반짝이는 적포도주병, 천둥소리 등으로 장소가 묘사되어 있다.
무대 세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거울이다. 정확히 말하면 거울의 효과를 주는 세트이다. 극 중 인물들은 딱 한 명의 인물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존은 소설 속 오브리가 되고 이안테가 되었으며, 바이런은 소설 속 루스벤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존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신의 자아 속 이안테를 발견하게 되는 지점들을 살펴보면 거울을 사용한 연출은 꽤 흥미로운 것 같다. 특히, 바닥이 거울처럼 비치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인물들이 무대 중앙에 설 때마다 바닥에 비친 모습에 시선을 두게 되는 지점들도 재밌었다.
실제 1819년에 출판된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 소설 속에는 루스벤이 바이런을 묘사한 인물임을 알 수 있는 구절과 설정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또한, 저자인 존 폴리도리가 소설 속 인물인 오브리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지점도 어렵지 않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뮤지컬 더 테일은 이 같은 설정들을 가져와 두 인물의 갈등, 질투, 분노 등의 심리적 관계 더 집중하려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더 테일에서는 존을 표현하는 배우들마다 노선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실제 존은 바이런을 문학적 성취모델로 여겼지만 일각에서는 존 폴리도리가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였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며, 실제 존이 바이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감정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 할 이유는 없지.’라는 대사를 통해 배우가 실제 존이라는 인물을 잘 이해하고 캐릭터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죽이려고 했던 건, 내가 죽였던 건 이안테."
뮤지컬 더 테일에서는 존이 소설 속 자신을 투영한 오브리가 사랑하는 이안테를 죽였다고 고백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이내 루스벤(바이런)이 이안테를 죽인 것이라고 분노하며 소리친다. 이안테는 소설 속에서 루스벤에게 매력을 느끼는데 실제로 이안테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며 아름다움과 순수함의 상징이다. 이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물이 루스벤(바이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는 지점은 존 폴리도리가 뱀파이어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바이런의 민낯이 아니었을까.
"이안테는 나야."
극 중에서 결국 존은 자신이 오브리이자 이안테임을 밝히는데 이는 존(오브리)이 바이런(루스벤)을 사랑한 자신의 자아를 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징적 해석도 해 볼 수 있다. 실제 존은 자신을 향한 바이런의 무시, 조롱, 비난 그리고 그의 문란한 행동들에 분노하고 실망한 상태였으며 바이런을 떠난 후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너의 몸은 나의 무덤’이라는 대사를 통해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결국 바이런이라는 인물의 그늘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실제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지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단순히 뱀파이어 소설에 대한 조지 고든 바이런과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저작권 다툼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이 둘의 관계를 모티브로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숨겨진 감정들을 드러내는데 중심을 둔 작품이므로 처음 작품을 보시는 분들은 반드시 소설과 인물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관극하는 것이 좋다. 작품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영미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기를 추천드린다.
나의 이른 리뷰가 관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