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버스의 파업이 극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엄마집에서 모란역으로 가는 버스는 마을버스가 유일했다. 천천히 가자며 여유를 부렸는데, 파업으로 인해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마을버스 기사님은 연신 급정거를 해대다 결국은 앞 차와의 간격을 종이 한 장쯤 차이로 멈추는 데 성공하셨고, 승객들은 모두 큰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가실 거면 - 더 빨리 가셔서 - 모란역 공항버스 정류장에 - 내가 봐두었던 예정시간에 - 도착하시던가? 아니면 ~ 그냥 승객들 편안하게 ~ 안전운전을 해주세요 ~ 기사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모란에 5일마다 장이 서는 오늘, 인도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조금만 서두르면 공항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을 듯했다. 하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날렵하게 뚫고도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차도로 급하게 달려가 잠시 정지한 버스의 문을 두드르렸지만, 매정한 기사님 단호히 거절. 아쉬운 발걸음은 다시 인도의 인파에 묻혔다. 알고 보니 오늘은 2025 에어쇼의 마지막날, 내가 도착한 시각은 때마침 쇼가 끝난 시간이었다. ”아, 그래서 모란역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구나. 그래, 천천히 가자고 했었지? 시작부터 기다리는 연습이다. 처음 가는 태국의 치앙마이. 어떤 모습을 마주할게 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흘러가듯 시간을 보내고 오자 했으니 출발부터 그렇게 조용히 느긋하자. “
80일간 산티아고를 걷고, 조지아 사바네티 트래킹까지 마치고 돌아온 나는 시간이 갈수록 한국 생활에 더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해외에서의 장기체류 후 한국생활은 대체로 묘한 이질감에 휩싸여 그동안 그리웠던 엄마의 집밥과 한국음식을 섭취하고, 친구들을 만나 그리움을 해소하고, 허약해진 체력에 힘을 보태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두 발을 편히 뻗고 누워 아무 일정이 없는 내일의 아침을 늦잠으로 채울 생각에 웃음이 감돈다. 그리고 느지막이 잠에서 깨면 한 상 차려질 엄마의 솜씨 또한 한국이 행복한 이유일터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데 이상하리 만치 이질감은 커져갔고, 한국에서도 난 이방인이라는 기분에 발 없는 새 처럼 그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산티아고를 걷고 온 사람들이 말하던 까미노 블루일까?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상태일까?
매일이 새로웠고, 순간이 감동적이었고, 매번 나를 칭찬했던 그 길의 환희가 너무 커다랗던 탓이었나? 물 흐르듯 유유자적하자던 그 마음은 점점 얇아지고, 단단히 쌓았다고 자부했던 내 안의 성은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조금씩 조금씩 공기 중의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매정했다. 땅 위에 착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틈을 봐서 또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한국에서 정착하자는 두 마음이 마치 천사와 악마처럼 이리 말하다가 저리 말했고, 이리 꼬셨다가 저리 꼬셔댔다.
이런 와중에 내게 주어진 왕복티켓. 그간 쌓아온 마일리지 소멸 소식에 안개 자욱한 신비로운 숲을 떠올렸고, 이국적인 사원이 있는 도시를 걷다가 시끌벅적 야시장에서 먹는 카오소이의 맛을 기대하며 예매한 그 항공권. 1년 전에 나는 내가 8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리란 걸? 조지아에서 트래킹을 하며 날것과 마주하게 될 것이란 걸? 그 후, 까미노 블루에 시달릴 거라는 걸 알기라도 했을까?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방인 같은 하루하루에 나는 깊이 망설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으며, 심지어는 이 여행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날짜가 점점 다가오니 이건 여행이 아니라 짐이었다. 나에게 이런 순간이 오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자! 아니, 가고 싶지 않다!‘를 반복하는 내가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가 되었을까?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새로운 환경과 날씨에 적응하는 것도, 길 위에서 흥정해야 하는 것도, 합리적이고 좋은 것을 위해 투쟁하는 나도 대면하기가 싫었다. 이런 마음으로 어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행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모든 감각과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미학인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치앙마이 왕복 티켓을 두고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버스는 지금 주황색으로 변한 해의 방향을 따라 달리고 있다. 창밖의 아파트 사이사이로 그 해가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이어폰에서는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흘러나오고, 점점 붉게 물드는 하늘은 “그래, 다시 떠나오길 참 잘했어! “라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고마워, 나는 지금 치앙마이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