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배낭여행자와 만나다

by 조란마


속삭이듯 첫 악장 Andantino가 시작되었다. 청명한 밤에 별들이 반짝인다. 가녀리지만 신비로운 그 빛들이 그의 연주에 맞추어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이내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의 슬픔이 아닌, 뭉클한 선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슬픔이었다. 그러다 장난기 가득한 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튀는 리듬은 유쾌하며, 박진감이 넘쳤다. 서정적이면서도 유머가 흘러넘쳤고, 긴장감을 주다가도 부드러웠다. Sergei Prokofiev의 Violin Concerto No.1 in D Major, Op.19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하여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울컥했다가 웃음이 번졌고, 느긋하게 몰입했던 희망의 꿈을 단번에 깨기라도 하듯이 날카롭게 소리도 내었다. 그렇게 고요히 속삭였다가, 활활 불태웠다가, 점점 사라지듯 곡은 끝났다.


우리의 첫 만남은 2010년 3월, 늦겨울과 이른 봄 사이의 그날은 눈이 내렸다. 그날의 눈처럼 하얗게 빛났던 첫 대면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커피가 좋아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캐나다부터 아르헨티나까지 2년 반의 시간을 오롯이 커피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고 온 나에게, 그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전해주는 온기는 긴 여행에 지쳤던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조카와 배낭여행자 이모의 운명 같은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그와 나는 단짝처럼 서로를 응원하며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모를 졸졸 따라다디 던 꼬마는 어느덧 키가 흘쩍 컸고, 목소리도 마음 씀씀이도 더욱 의젓해졌다. 그에게 음악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감정을 가장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음악은 그에게 위로이자 치료제이며,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며칠후면, 그와 나는 오스트리아로 떠난다. 조카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비행기를 탈 때, 그와 같이 다니며 여행을 하겠다던 나의 야무진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의 무대는 그 여정의 출발점이다. 그간의 연습을 스스로 정리하며, 새로운 무대에서의 도전을 다짐하는 의미 있는 무대이다. 그의 연주는 이모와 조카사이에 흐르는 애정과 기특함의 선율이라기보다 하나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주는 그의 마음속 이야기였다.


Sergei Prokofiev가 그려낸 곡에 조카의 색이 입혀진다. 깊은 울림으로 추운 겨울밤 하늘을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