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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15. 2024

지극히 가만가만

행복


드문드문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지극히 작은 것일 때가 많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기분 좋은 바람을 맞을 때. 그리고 나는 내 딸들과 함께일 때 자주 행복하다. 오늘도 그랬다.


큰 아이가 먼저 유치원을 가고 둘째가 남았다. 어린이집 등원까지 거의 한 시간이 남는데 날씨가 좋아 산책을 간다. 학교 가는 언니, 오빠들 뒤를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집 앞 놀이터에 갔다. 아무도 없는 한가한 놀이터에서 우리 둘이 다정히 그네를 탔다. 평소에는 혼자 타는 그네를 오늘은 내 무릎 위에 앉아 타니 엄청 좋아한다. 원래도 웃음이 많은 편이지만 정말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표정을 나는 안다. 원래도 처진 눈썹이 더 축 처지면 최고 기분이 좋다는 거다. 축 늘어진 눈썹과 함께 반달이 된 두 눈을 보니 덩달아 웃음이 났다.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까악 울었다.


"까마귀야. 노래 좀 그만 불러."


"까마귀가 노래 부르고 싶었나 봐. 너도 노래 부르잖아."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헤이!"


봄이 오는데 갑자기 캐럴을 부른다. 둘째는 유난히 크리스마스와 산타를 좋아한다. 지금도 종종 캐럴을 부르고 산타 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줬는지,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까마귀한테 호통 치다  따라서 노래 부르는 아이. 봄이 오는 3월에 느닷없이 캐럴을 부르는 아이. 참말로 엉뚱 발랄하다.


비행기 한대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혜리야~ 비행기 지나간다."


"비행기 타보고 싶어."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비행기를 타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소원이 비행기 타보는 것이다.


"하나님. 들으셨죠? 우리 하리랑 혜리 비행기 타게 해 주세요."


"예수님. 비행기 타고 싶다니까 왜 내 말 안 들어줘요!!!"


이번엔 예수님한테 호통치는 아이. 그네 위에서 까마귀를 보고 캐럴을 부르며 비행기를 보고 예수님을 부르는 아이. 나는 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새파란 하늘을 본다. 혼자 보던 하늘은 고요했는데 아이와 함께 올려다보는 하늘은 왜인지 시끌벅적하다. 하늘도 요 아이의 조잘거림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겠지.


지극히 평범한 아침. 지 마음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로 인해 특별한 하루를 맞는다. 그래, 하루쯤은 이렇게 내 마음대로 바라봐도 괜찮지 않을까? 부르고픈 노래도 불러보고 하고픈 말도 해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웃어봐도 되지 않을까? 뭐가 그렇게 진지해서 입 다물고 땅만 보며 걸었는지. 나는 오늘도 놀이터에서, 그네에서, 하늘 아래서 지극히 가만가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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