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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23. 2024

아름다운 빨래집게


평소에는 유치원 버스로 등하원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내가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가기도 한다. 주로 병원을 가야 할 때인데 오늘도 그랬다.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예전에 초등학교였던 곳이라 넓은 운동장이 있고 학교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운동장에 들어선 순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정겨움에 봄바람 같은 일렁임이 마음을 휘저었다.


운동장 한쪽 구석 나무에 묶인 빨랫줄과 색깔별로 줄줄이 꼽힌 빨래집게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학부모참여수업 때 아이들의 작품을 걸어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여기가 유치원이라 그런 걸까, 아이들을 닮아 그런 걸까? 곳곳이 아이들처럼 앙증맞고 귀엽다. 선생님 따라 줄지어 걸어가는 아이들 마냥 가지런히 널린 빨래집게가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집에서는 빨래 널 때나 쓰지 정다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녀석인데 유치원 운동장에서 만난 녀석들은 톡톡 튀는 아이들이 되어 눈에 콕콕 박힌다. 나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조금은 슬퍼진다. 너무 사랑하면 조금은 아프고 너무 행복하면 조금은 무서운 것처럼.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사랑해서 너무 행복해서 나는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무섭다.


봄바람이 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데 빨래집게는 왜 이리도 슬픈 단말인가. 아주 가까운 것들, 작고 작은 것들, 평범한 것들. 그런 것들이 주로 그렇더라. 나는 그런 것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시끌벅적한 내 마음과 이 세상에서 운동장으로 한발 옮겨갔을 뿐인데, 새롭다. 세상의 염려로 가득했던 내 마음이 부끄럽고,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다툼을 보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아이들이 숨 쉬고 있는 운동장이 아니라 요란한 세상 한가운데였다면 빨랫줄은 땅을 나누는 기준선이 되었을 것이고, 빨래집게들은 서로를 물고 뜯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 슬프고 아프고 무섭지 않도록 가까이에 있는 것들, 작고 작은 것들, 평범한 것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울 수 있기를. 사랑하기를. 행복하기를. 일렁이는 내 마음을 저 빨랫줄에 단단히 묶어두고만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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