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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y 31. 2024

마음 싱크홀


묻고 싶다.


별일 없는데, 무슨 일이  없는데 그냥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 감정이 없는 것처럼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 뭔가 마음에 딱 한 움큼만큼의 빈 공간이 생긴 것 같은 마음. 그런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마음에도 싱크홀이 생길 때가 있는 것 같다. 땅의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 및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싱크홀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도 지반이 내려앉듯 약해질 때가 있다. 약해진 자리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 아픈 기억, 상처들이 달라붙는다. 곧 내 마음에는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딱 한 움큼만큼의 구멍에도 우리는 쉽게 무너진다.


처음 이 구멍을 발견했을 땐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힘들지?' 잠을 자지 못했다. 입맛이 없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삶에 재미가 사라졌다. 아침이 오면 두려웠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 시기를 지난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나왔는지 돌이켜보면 이미 그 구멍을 만난 사람들의 도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멍이 있다. 마음에 빈 공간이 있다. 그 크기가 다르고 그 구멍을 만나는 시기가 다를 뿐.


마음의 빈 공간은 어느 순간 찾아왔다가 어느새 사라져 있기도 하고, 내가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싱크홀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구멍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며,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 괜찮은 상태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제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면 된다. 부정적인 생각, 아픈 기억, 상처는 구멍을 더 크고 깊게 낼 것이다. 구멍을 메우고 싶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아픈 기억에 잊힌 아름다운 시간들을 끌어내야 한다. 상처를 마주하고 치료해야 한다. 시기를 놓친 상처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아파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듯 빈 공간을 가꿔야 한다. 좋은 것을 심고 나쁜 것은 뽑아낸다.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치료하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구멍을 단번에 메울 순 없을 테다. 애써 가꾼 밭을 다시 갈아엎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하면 된다. 마음도 연습이고 생각도 훈련이다. 단단한 땅은 햇빛도 받고 비도 맞는다. 우린 약하지만 단단해질 수 있다. 꽃이 혼자서 가만히 핀 것이 아니듯 우린 햇빛도 비도 구멍도 만난다. 빈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알아본다. 같이 가꾸어간다. 밭이 되고 단단한 땅이 되고 꽃이 자란다. 모든 것을 견딘 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핀다.


묻고 싶다.


빈 마음을 내버려 둘 것인지, 빈 마음을 채울 것인지. 나는 내 초라하고도 기특한 빈 공간을 바라본다. 더 이상 뻥 뚫린 채 두지 않기로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 빈 마음 때문에 조금만 아파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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