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둘째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아이다. 배고프다 말하기 전에 냉장고 문을 먼저 벌컥 열고 본다.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보여주길래 "엄마가 밴드 붙여줄게. 잠시만." 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면 이미 밴드 껍질을 떼어내고 있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주 쓰는 것 같다. 첫째 아이는 반대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표현을 자주 한다. 그에 비해 행동은 조금 느린 편이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 그 행동이 왜 지금 필요한지 말로 알려줘야 쉽게 움직이는 것 같다.
행동을 실천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것이 괜찮겠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있어 행동이 먼저일 때는 걱정될 때가 훨씬 많다. 아직 미숙한 것이 많은 아이가 불쑥 튀어나갈 때, 빠르게 움직일 때 부모는 놀란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아이가 '말'을 먼저 해주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도, 내가 없는 곳에서도 의사표현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말로 해. 말로 하는 거야."라는 말을 매우 자주 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첫째보다 둘째가 걱정되고 불안할 때가 많다.
그런 내게, 오늘 둘째가 들려준 말이 유독 고마워 글을 쓴다. 구름이 찬찬히 흐르듯 아이들도 느리지만 분명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첫째에 비해 그저 천방지축으로 보이는 둘째가,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둘째가 창 밖 색깔 바뀐 단풍잎처럼 자연스럽고 멋지게 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둘째가 새로운 계절에 들어선 것 같은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거실에 놓인 작은 트리를 둘째가 참 좋아한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오면 꼭 트리 앞에서 알짱거리고 트리에 걸어둔 작은 장식품들을 만지작거린다. 밤이 되면 전구 불도 알아서 켠다. 그러다 보니 벌써 몇 개의 장식품들은 망가졌다. 오늘 저녁에도 작은 전구 알 하나를 깨뜨렸다. 크기는 작았지만 바닥에 톡 떨어지면서 미세한 파편들이 넓게 튀었다. 아이들이 밟을까 봐 얼른 달려가 "뒤로 가자. 안 다쳤어?"하고 묻는데 둘째가 내 질문과 거의 동시에 하는 말,
"엄마 미안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깜짝 놀랐다. 작지만 아주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하는 둘째의 동그란 입술. 저 작은 두 눈이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하다. 더욱 축 처진 눈썹이 증명하고 있다. 둘째의 진심을.
잠자리에서 둘째에게 말했다.
"아까 전구알 깨뜨렸을 때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맙고 기특했어."
아이의 보들한 볼을 쓸어내리니 올라간 입꼬리가 만져졌다. 어두움 속에서 아이가 웃고 있다. 나는 이럴 때 마음팍이 가득 참을 느낀다. 나는 이럴 때 안심이 된다. 아이가 자기 입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한다는 것이 매번 경이롭다. 그것이 때론 부정적이고 틀렸다 해도,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의 입이 부모를 향해 열려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입보다 귀를 열고, 귀보다 마음팍을 더 열어놓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꾹. 꾹. 눌러 담아 써놓는다. 아이들처럼 나도 연습이 필요하다. 이 겨울 새로운 계절 안에서 우리 또 얼마나 자랄까 기대하면서 나도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