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독서노트, 존 스튜어트 밀
COVID-19 사태가 어느덧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쓰고 여럿이 모이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같은 생활 방식에 점점 지쳐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의문점이 생겼다. COVID-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가 실시하는 이러한 방역 조치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구하기 전에 자유란 무엇인지에 충분한 고민을 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해서 자유론을 읽게 되었다.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거꾸로는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를 조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존 스튜어트 밀(이하, 밀)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밀이 살던 시대인 19세기 영국에 다수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횡포에 의해 개인의 사생활은 더욱 많은 간섭을 받게 되고, 인간의 개성이 사회 표준에 맞게 획일화되는 현실에 밀은 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밀은 이에 맞서기 위해 자유론을 통해 자유의 원칙을 천명한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 서병훈 역, 책세상, 2017, pg.32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저런 일들 (중략) 공동 작업의 일정 부분을 감당하는 일 등을 해야 한다.
「자유론」, pg.34
위 두 구절에서 나타나듯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 쓰인 책일 뿐, 실제로 밀은 개인의 자유만큼 공동체 의식도 함께 강조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밀이 정의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데 밀은 이에 대해 이어지는 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개인의 자유 실현에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생각이 제한된다면 행동에도 제약이 발생하므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설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밀은 다수가 소수의 생각 또는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소수가 다수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는 것만큼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과거 계급 사회에서는 후자와 같은 상황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밀이 살던 시대와 현대에는 전자와 같은 상황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밀은 그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고 이어서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짓밟으면 안 되는 이유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그것이 어떤 의견인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어렵고 진지하게 시험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진리의 합리적 근거를 그다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나의 편견과 같은 것으로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로,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유론」, pg.102-103
근거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2장을 읽은 후 필자가 좋아하지 않았던 현대 사회의 몇 가지 담론에 대해 더욱 열린 마음을 가지는 한편, 여태껏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 사고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회적 통념을 스스로 사유하여 얻은 산물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만약 어떤 의견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고 반대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면 그 의견은 본인의 이성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밀이 지적한 대로 어떤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라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통념을 지적하는 새로운 의견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이유로 스스로의 귀를 틀어막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모든 위험과 불확실성을 본인 스스로 책임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일체의 물리적, 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대로 행동하는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유론」, pg.109
2장에서 생각의 자유를 논했으니 이제는 행동의 자유를 논할 차례이다. 밀은 행동의 자유에 대해 위와 같이 역설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가 필요한 이유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한 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실험도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더욱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밀이 살던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는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에서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모두가 적대적인 시선과 가공할 만한 검열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중략) 어떻게 해야 자신의 타고난 최고, 최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최대한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 또는 경제적 여건이 비슷한 사람이 주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는) 자기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즐겨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자유론」, pg.118
현대 사회에 적용해도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는 구절이다. 유럽 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눈치 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밀이 기술한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인간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것들을 획일적으로 묶어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잘 가꾸고 발전시킴으로써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중략) 각자의 개별성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중략)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자유론」, pg.121
밀은 맹목적으로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한편, 개성에 따라 정력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룬 사람들이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개별성이 발달한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동의 자유는 필수이다. 결국 머리말에서 밀이 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행동의 자유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누구의 행동이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사회가 그에 대해 사법적 권한을 가진다. (중략) 그러나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단지 본인의 이익에만 영향을 미친다면, 또는 그들이 원치 않는 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중략) 이 모든 경우에는, 각 개인이 그런 일과 그로 인한 결과에 절대적인 법적, 사회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유론」, pg.144
이 원리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서로의 행복이나 성공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이 이기적인 무관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심각한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 원리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론」, pg.144
자유론을 읽고 첫 번째 인용구만 기억한다면 그것은 책을 절반밖에 읽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 중요한 내용은 바로 두 번째 인용구에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개인'이라는 단어에 몰입되기 쉬운데 밀은 계속해서 공동체 의식을 함께 강조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행동이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할 수 없는 것일까? 예컨대 매일 술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 사회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것일까? 밀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행동이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충고 또는 경고를 할 수 있을지 언정, 그만두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행동 중 일부는 단순히 다수의 편의 또는 기분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규정된 행동에 대한 제재가 인정되는 순간, 개인의 자유가 비합리적으로 침해될 여지는 상당해진다. 단, 자유론에서 누차 강조하지만 여기서 언급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다. 타인에 해를 입히는 행동에는 사회가 당연히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것은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한번 이렇게 하고 나면 나중에 다시는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는 자신을 팔아버리는 행위도 허용해주는 원리, 즉 자유의 목적을 본인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자유 상태에 있을 때 누리는 이점을 향유할 수 없다.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론」, pg.191
스스로를 노예로 파는 것도 개인의 자유인가? 밀은 그것은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자유의 목적은 개별성의 발휘를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자신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단순히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서 자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자유를 통해 자기 발전을 실현해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밀은 자유를 포기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밀은 국가가 사람에게 교육을 강제하는 것을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지 않는다.
국가가 시민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도록 요구하고 또 강제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자명한 원칙 같은 것이 아닐까? (중략) 어린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상, 그 아이가 나중에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위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부모(또는 법과 관습에서 정해놓은 아버지)가 져야 할 가장 신성한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론」, pg.195
정부가 모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교육을 직접 담당하려고 헛되게 애쓸 필요는 없다. (중략) 교육의 다양성도 그에 못지않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교육을 일괄 통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똑같은 하나의 틀에 맞추어 길러내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자유론」, pg.196
국가가 시민에게 교육을 강제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어린아이들이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손에 쥐고만 있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적절하게 이용될 때 비로소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의 자유를 활성화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밀은 획일화된 교육은 몰개성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여 국가가 교육을 직접 담당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제 처음 제기했던 방역 문제로 되돌아가 본다. 자유론에서 정의된 자유에 의하면 본인이 감염자일 때 타인에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고 이는 타인에 해를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가 격리 등의 방역 조치는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감염되지 않은 상태라면 마스크를 착용토록 하거나 단체 모임을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COVID-19가 무증상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검사 전까지는 누구도 감염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확률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개입에 대해 밀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중시한 밀이라면 개인이 COVID-19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이상 어떤 방역 조치라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이와 반대로, COVID-19 종식일까지 장기적인 지역 봉쇄나 이동 제한 등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침해하는 조치까지 옹호하는 등 적어도 양 극단에 치우친 의견을 내세웠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밀은 방역 전문가는 아니니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에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할 것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용 출처 -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 서병훈 역, 책세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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