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서노트, 니콜로 마키아벨리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해 오랜 시간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곳, 군대. 보통 사람이 인간의 본성과 역학 관계를 체득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병역의 의무를 마친 한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한 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후임이 지독한 선임을 평가할 때 어떤 선임에게는 이야기 끝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와 같은 옹호 의견이 뒤따르는 반면, 어떤 선임에게는 시종일관 육두문자가 따라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중·상사는 '사람은 참 좋은데…'로 시작해서 늘 부하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가? 군주론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해 줄 단초를 제공한다.
인간에 대해 이렇게 일반화할 수 있다.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말쟁이이고, 위선자이고, 위험을 멀리하고, 이익을 탐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 권기돈 역,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8, pg.108-109
인간은, 자기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만드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염려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감사의 끈으로 확보되는데 인간은 비열해서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언제든지 이를 끊지만,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강화되니 이는 항상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군주론」, pg.109
군주론은 '군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내부의 반란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력 위협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이하,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인간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 어떤 미덕도 저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이기적 존재이다.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속수무책이고 여우는 늑대에게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겁주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군주론」, pg.112
따라서 군주론에 의하면, 인간의 악한 본성을 고려할 때 군주에게 있어 미덕은 자비와 겸양 등 따위가 아니다. 이와 정반대로 군주는 반란의 싹을 조기에 무자비하게 짓밟고, 유리한 것을 본인의 공으로 불리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교활함을 갖춤으로써 스스로가 백성에게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 원리를 군대에 대입하면 후임이 만만히 여기는 선임의 특징 한 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군대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시키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역할을 맡는 사람은 미움을 사게 된다. 일부 후임에게 무시당하는 선임은 주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올곧고 유한 성격 때문에 모든 원망의 화살이 본인에게 향하도록 하고, 무서운 선임이 되는 데도 실패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임들에게 이른바 '참군인'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선임들에게 지저분하더라도 원망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후임들이 무서워하는 존재가 되거나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실천했어야 한다고 조언했을 것이다.
군주론은 애당초 독자를 군주로 상정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사회적으로 고립당하기 쉽다. 위 군대 예시에서도 원망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일을 시키고 잔소리하는 것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라는 의미이지 공공의 적을 만드는 데 선봉장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후임들이 무서워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추라는 것이지 폭언과 폭행으로 후임을 제압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원칙은 보톡스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이를 곧이곧대로 실천하면 독이 되지만 적당한 농도로 희석하여 사용하면 치열한 수 싸움이 난무하는 현대 경쟁 사회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공고히 지킬 수 있는 좋은 약이 된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몇 가지를 소개한다.
군주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 해를 가해야지 이를 매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중략) 폭력은 단 한 번만 가해져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맛인지를 잊을 것이고 따라서 덜 분해할 것이다. 시혜는 서서히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더 좋은 맛이 날 것이다.
「군주론」, pg.75
이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로 결심했다면, 한 판 시원하게 벌이고 난 다음에는 뒤끝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처음부터 지나치게 베풂으로써 상대방의 기대감을 과하게 높이지 말라는 원칙은 현대에 그대로 적용해도 완전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군주가 용병에 기초하여 국가를 방어하려 한다면, 그는 결코 안정이나 안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중략) 이 모든 것의 이유는 그들에게 지불되는 하찮은 보수 외에는 그들을 전장에 묶어둘 다른 매력이나 동기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용병들이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기에 충분하지 않다.
「군주론」, pg.87-88
원군은 그 자체로는 유용하고 믿음직할지 몰라도, 그들을 불러들이는 사람에게는 거의 언제나 재난이다. 그들이 패배한다면 당신은 곤경에 처하게 되고, 그들이 승리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군주론」, pg.94
나는 군대란 반드시 군주나 공화국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군주는 친히 지휘권을 쥐고 자신의 군대를 스스로 통솔해야 한다.
「군주론」, pg.89
위 구절들이 타인에 대한 무조건 불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되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지 못하면 본인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삶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때때로 간과하기 쉬운 원칙이다. 가장 흔한 예는 요리를 잘 모르는 음식점 주인이 거액을 들여 유명 주방장을 데려오는 경우이다. 음식점의 본질은 맛이기 때문에 주인은 주도권을 주방장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으며, 본인의 철학대로 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군주는 자신을 미워하고 경멸하게 만드는 어떤 것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한, 그는 그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며, 내가 언급한 다른 악덕으로 비난받는다 해도 아무 위험도 겪지 않을 것이다. (중략) 군주가 경멸을 받는 것은 그가 변덕스럽고 경박하고 비겁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판을 얻을 때이다. 군주는 이것을 전염병인 양 피해야 하며, 그의 행동에서 당당함, 용맹함, 진지함, 강함을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군주론」, pg.115-116
마키아벨리는 사랑받는 군주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미움받는 군주가 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흔히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을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어차피 더 이상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자신의 운과 상황이 변하는 순간 역풍을 맞게 된다. 같은 원리로, 타인에게 다정한 사람으로 보일 필요는 있지만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까지 가벼운 존재로 인식될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 군주론을 읽으면서 특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내용은 많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보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에 대한 16세기의 통찰력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전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그런데 군주론이 아무리 좋은 고전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자기 계발서 내용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굳이 딱딱한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 역시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데도 같은 목적을 성취할 수 있고, 두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데도 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다른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략)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인내심과 신중함으로 행동하고 시대와 상황이 이런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는 흥하겠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그는 자신의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론」, pg.148
현대에 지식의 원천은 다양하다. 따라서 개개인의 여유 시간과 취향에 따라 본인에게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읽든지 이후에 어떻게 스스로 변화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알량한 스노비즘으로 무조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패망을 부르기 쉬운 행동이다.
인용 출처 -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 권기돈 역,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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