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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y Feb 28. 2024

달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2편, 베트남의 달리기 환경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활 체육은 무엇일까? 단연코 축구(풋살)가 압도적 1위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에서는 거리를 쏘다니다 보면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한창 축구를 즐기고 있는 베트남 남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하노이 시내에는 여러 개의 축구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규모 축구장이 동(洞) 단위로 있는데 평일 저녁에도 빈 곳을 찾기 쉽지 않다. 일상에서도 자기가 속한 팀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베트남 남성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베트남에서 생활 체육으로서의 축구가 보편화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직 생활 체육 시설의 발달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특별한 시설을 요구하지 않고 공과 적당한 크기의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구기 종목이 축구 외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자료 1] 저녁에 여러 개의 축구장을 가득 메운 베트남 남성들

    그렇다면 축구 다음으로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생활 체육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구글에 검색해 보면 배드민턴이나 배구 등이 순위에 오르는데 이는 흔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포츠'로 응답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며, 스포츠에서 운동으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축구 다음으로 '달리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고, 축구만큼은 아니지만 저녁거리 곳곳에서 달리기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고 나서 필자가 단순하게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베트남에서 달리기가 보편화된 이유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든 운동화 한 켤레만 있다면 쉽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요즘 베트남에서 국민 운동이 된 달리기. 그렇다면 실제로 베트남의 달리기 환경은 어떨까?


베트남 달리기 환경의 단점 세 가지


    필자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종종 운동 삼아 달리기를 했는데 한국과 비교하였을 때 베트남의 달리기 환경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자료 2] 달리기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베트남의 보행로

    첫째, 뛰기에 마땅한 장소가 별로 없다. 한국은 어느 곳이나 길이 고르기 때문에 보행로를 따라 달리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달리기 코스가 완성된다.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귀찮음을 뚫고 운동을 할 장소까지 가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아파트 단지변도 훌륭한 달리기 코스가 되기 때문에 멀리 나갈 필요가 없어 부담이 없다. 그러나 베트남은 인도가 좁고 고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포장된 인도도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거나 노점이 차지하여 진로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고른 길을 찾아 공원이나 트랙으로 가자니 그 수가 적어 한국에 비해 거리 면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하노이의 많은 공원들은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데 수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갑자기 코끝을 찌르는 악취나 생선 비린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상쾌한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베트남에서 달리기를 하러 나갈 때에는 마음먹고 나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했다.


    둘째, 달리기 용품이 비싸고 선택 폭이 넓지 않다. 러닝화나 스포츠 워치, 싱글렛 등 비단 달리기 관련 용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산품은 한국이 베트남에 비해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가성비도 높다. 사실 필자의 달리기 실력은 초보 수준이라 아무 운동화를 신고 뛰고, 스마트폰으로 운동 기록을 측정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러나 취미 생활에서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끔 필요성과는 별개로 고가 라인의 러닝화나 스포츠 워치를 갖추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찾고 있는 제품이 입고되어 있지 않거나 제품이 있더라도 이 가격에 사기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단념한 경우가 많았다.

[자료 3] 심각한 미세먼지 때문에 탁해진 하노이의 하늘

    셋째,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점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달리기 코스를 찾아서 하노이 곳곳을 탐험하는 것이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딱히 사고 싶은 제품이 없으니 장비 관련 불필요한 지출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미세먼지 문제는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베트남, 특히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 지역의 미세먼지 수준은 매우 심각하여 대부분의 날은 미세먼지 수치가 '나쁨'이고, 미세먼지 수치가 '좋음'도 아닌 '보통'인 날도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달리기는 심혈관과 호흡계 건강 증진이 가장 큰 장점인 운동인데 베트남의 심각한 미세먼지 수준은 이를 가뿐히 상쇄해 버린다. 특히 미세먼지는 낮보다 밤에 짙어지는 경향이 있어 퇴근하고 나서야 운동할 시간이 나는 필자와 같은 직장인에게 높은 미세먼지 수치는 더욱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는 건강을 지키려고 하는 달리기인데 과연 이것이 맞는 선택인지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베트남 달리기 환경의 장점 네 가지


[자료 4] 크게 활성화된 하노이의 달리기 커뮤니티

   여러 가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달리기 환경에는 당연히 장점도 있다. 첫째, 달리기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다. 달리기가 보편화되어 있으니 관련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운동 및 액티비티 관련 앱인 스트라바를 뒤적이면 등록된 달리기 그룹의 수가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는 것보다는 혼자 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언젠가는 한 번 달리기 그룹에 가입해서 베트남 사람들과 교류의 폭을 넓혀 볼 계획이다. 지금도 달리기를 통해서 새로운 베트남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베트남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취미 얘기가 나오면 특히 남성의 경우, 달리기를 취미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트라바 계정을 서로 공유하고 추천할 만한 달리기 코스가 있는지,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뛰는지, 마라톤 대회 준비 계획이 있는지 등등 달리기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대화의 물꼬가 트이곤 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 베트남 친구의 친구와 달리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4월에 열리는 하노이 서호 마라톤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달리기는 현지인과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열어주는 좋은 수단이다.

[자료 5] 상의를 탈의한 채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베트남 남성

    둘째, 달리기 환경이 한국보다는 자유로워 보인다.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삶의 많은 영역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타인의 눈치를 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달리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달리기 복장은 과감하다. 남성은 하프타이즈나 싱글렛을 입고 뛰거나 아예 상의를 탈의한 채로 달리기를 하고, 여성은 보기 민망할 정도의 레깅스와 탱크톱을 입고 뛰는 경우가 정말 많다. 슬리퍼를 신고 뛰거나 아니면 맨발로 뛰는 경우도 허다하다. 동남아의 날씨가 덥고 습한 탓도 있겠지만 비교적 선선한 저녁 시간 공원에도 과감한 복장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을 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본인들이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달리기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야외에서 상의 탈의는 상당한 민폐로 여겨지고, 하프타이즈나 싱글렛은 관록의 달리기 고수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루는 주말 대낮에 공원으로 달리기를 나갔는데 찜통더위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 상의를 탈의한 채로 공원을 질주하는 베트남 남성들을 따라 과감하게 티셔츠를 벗고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망함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필자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화끈거림은 사라지고 몸이 점차 쾌적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이와 동시에 찾아온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달리기를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이었다면 공연음란죄로 신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자료 6] 하노이 최대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롱비엔 마라톤

    셋째, 마라톤 대회가 꽤 많이 열린다. 베트남 전국적으로 한 해 동안 다양한 마라톤 행사가 열린다. 베트남 북부 지역만 한정하더라도 올해 큼직한 대회가 8개 이상이다. 그중에는 야간 마라톤이나 정글 트레일 마라톤 등 언젠가는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색다른 콘셉트의 마라톤 대회도 있다. 참가비도 얼리버드 이벤트를 활용하면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참가에 큰 부담이 없다. 그래서 필자도 4월 서호 마라톤을 시작으로 10월 말에는 베트남에서 저명한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롱비엔 마라톤의 풀코스 완주를 올해 목표로 삼고 열심히 준비 중이다.

[자료 7] 먹어 본 사람만 안다는 베트남의 생망고 스무디

    넷째, 달리기가 끝나고 쉽고 싸게 먹을 수 있는 망고 스무디. 동남아 국가 생활의 장점 중 하나는 신선한 생과일 음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막상 베트남 생활을 하면서도 생과일 음료는 잘 먹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고서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수분 보충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한국에서는 달리기를 끝내고 항상 편의점에 들러 초코우유를, 베트남에서는 근처 카페나 노상에서 망고 스무디를 마시곤 했다. 그런데 초코우유와 망고 스무디를 비교하자면 망고 스무디가 청량감에서나 든든함에서나 압승이다! 너무 인위적이지 않은 단맛과 묵직한 식감의 생망고 과육, 각각 고소한 맛과 시원함을 더해주는 코코넛 밀크와 얼음이 조합되어 탄생한 망고 스무디를 가장 갈증이 나는 순간에 들이켰을 때 온몸에 흐르는 짜릿한 기분. 이것이 바로 요새 유행하는 말로 도파민 분비의 순간이지 않을까?


3 < 4, 따라서 장점의 승리?


    상술한 베트남에서 달리기의 단점과 장점을 양이 아닌 질로 비교해 보면 미세먼지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장점들을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베트남의 달리기 환경은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부터 즐기던 운동 겸 취미이다 보니 베트남의 대기 질 상태를 항시 인지하고 걱정하면서도 달리기를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래도 담배는 안 피우니까.'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오늘도 달리기를 나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현관에서 미세먼지 앱을 켜고 역시나 하노이의 실시간 미세먼지 농도를 '매우 나쁨'으로 확인하고는 머릿속으로 또 되뇐다. '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미지 출처 - www.freepik.com (The photo used in the title is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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