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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vy Dec 02. 2021

어린 왕자

세 번째 독서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시절 접한 작품을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접했을 때 감회가 새로울 때가 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이하,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종종 그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곤 한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어린 왕자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행성을 떠나 여러 소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에서나 조금 흥미를 느꼈다. 한창 모험에 관심 있을 때여서인지 다음 행성에서는 또 누구를 만날까 기대하며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독사와 여우를 만나는 장면부터는 거의 글자만 읽다시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어린 왕자가 소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열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어린 왕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재밌게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뒷부분은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소한 것이 흐뭇한 미소를 짓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여행 사진을 우연히 서랍 한편에서 발견할 때 기분이랄까.



길들임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For me, you're only a little boy just like a hundred thousand other little boys. And I have no need of you. And you have no need of me, either. For you, I'm only a fox like a hundred thousand other foxes. But if you tame me, we'll need each other. You'll be the only boy in the world for me. I'll be the only fox in the world for you…"
Antoine de Saint-Exupéry,「The Little Prince」, Richard Howard 역, Harcourt, 2000, pg.59

    '우리는 서로를 길들임으로써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된다.' 사막에서 어린 왕자가 여우와 처음 만났을 때 여우가 해준 말이다. 여기서 길들인다는 것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는 그렇게 서로를 길들였다. 그러자 여우에게 어린 왕자는 다른 수천수만의 소년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닌, 황금빛 밀밭을 바라보기만 해도 어린 왕자의 노란 머릿결을 떠올릴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예전에 밀밭은 여우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밀밭은 여우와 어린 왕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과 진실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상을 더 넓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이 길들임이 가지는 의미이다. 모든 것이 너무도 쉽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요즘이 바로, 그 어느 때보다 길들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물의 의미


우물물을 함께 나눈 순간 비로소 어린 왕자와 비행사는 서로를 길들이게 된다.

    비행사와 어린 왕자가 갈증 해소를 위해 물을 찾아 나서는 장면을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보았다. 원작에서 그들은 정말 난데없이 사막 한가운데서 우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물물을 나눠 마시며 어린 왕자와 비행사의 우정은 한층 깊어진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끝까지 우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상황 속에서 둘의 우정이 계속 아름답게 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물이 의미하는 것은 우정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좇기 위해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물질적 여유라고 생각한다.

    "Here is my secret. It's quite simple: One sees clearly only with the heart. Anything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s."
「The Little Prince」, pg.63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이 아닌 단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여우가 어린 왕자와 헤어지면서 풀어놓은 비밀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 '물질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정과 사랑, 배려와 같은 정신적 가치이다.'가 된다. 원문에서도 'important' 또는 'necessary'가 아닌 'essential'을 사용했다. 'essential'은 단순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넘어서 필수 불가결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정신적 가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많은 가치들 중 최상단에 위치한다. 그러나 그것이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마무리


황금빛 밀밭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 특히 부를 추구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외면한 채 어린 왕자처럼 살아가라는 말은 위선적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만났던 이상한 어른들처럼 우리가 진실로 중요한 것은 모두 잊은 채 맹목적으로 물질만을 좇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텍쥐페리는 직업 이야기는 곧 연봉 이야기가 되고 집 이야기는 곧 시세 이야기가 되는 물질만능주의에 잠식된 작금의 어른들에 이렇게 경종을 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광활한 황금빛 밀밭을 바라보며 그만한 땅을 소유하지 못한 것에 슬퍼할 때가 아닌,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는 잠깐의 순간에도 그러한 생각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에 슬퍼할 때라고.



인용 출처 - Antoine de Saint-Exupéry,「The Little Prince」, Richard Howard 역, Harcourt, 2000

이미지 출처 - www.freepik.com, 유료 라이선스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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