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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Jun 22. 2023

요양보호사는

자기효능감을 일깨우는 직업이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을 돕고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나의 가치를 높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질적인 이유는 모르고 좋은 일을 하니까 나도 선한 영향력을 받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타인을 돕는 이유는 내 존재가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쓰일모가 있다는 확인을 위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운 동정심은 오히려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던 때 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데 스스럼이 없는 나를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누군가를 불편하게 여겼던 순간이 떠올랐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호의도 불쾌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논문을 쓰는 일에 도움을 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점자로 기록한 글을 한글로 변환하고 깨어진 수식을 다시 작업해서 끼워넣는 일이었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가볍게 응대를 했었나보다. 상대방이 오히려 나를 의심하고 불신해서 시작도 하기 전에 불쾌한 일이 생기고 화가 나서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부끄럽지만 난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불쌍해서..."라는 생각을 했었다. 입 밖으로 뱉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의 호의를 고마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난 오만했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상처를 주고 나 또한 상처를 받으면서 나이를 먹었고 사회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점점 삶의 방향이 명확해 지는 것 같다. 가식이나 겉멋의 포장이 벗겨지고 진심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사람을 돕고 지원하면서 진심으로 그들의 회복을 원하게 되었다.

일상유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현존하는 능력이 더 퇴화되지 않게 지켜주고, 발달할 수 있는 감각이나 근육을 키워 보다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응원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느리더라도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먹을 수 있게 응원하고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그 마음을 공감하고 존재 자체를 지지하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놓치지 않도록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졌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라는 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남의 집 일하러 가는 사람으로 포괄적으로 인식한다. 어르신 수발하고 시키는 일 다 해줘야 하는 철저한 을의 역할로 여기는 눈치다.

요양보호사에게 도움을 받는 대상자 역시도 돈을 지불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시간 내에 최대한의 것을 얻으려 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혜로워야 한다.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또는 사회적 약자에게 지원을 하는 것은 귀찮은 집안일 떠넘기고 쉬라는 뜻이 아니다. 예전같지 못한 대상자의 삶에 돕는 자를 보내어서 보다 양질의 삶을 살다긴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려는 의도다.

대상자가 청소를 했지만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스스로는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그 감정의 골짜기에서 끌어 내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혼자 걷기 위험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어려운 대상자를 옆에서 보조하며 산책을 돕는다. 근육을 유지하거나 강화해 주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 대상자의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요양보호사는 가족이라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다.

고여있는 공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서 죽음만 바라보며 꾸역꾸역 살고 있는 대상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주고 남은 시간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작 한 달이지만 일을 하면서 느꼈던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숭고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게 된 내가 대견했다. 나 역시도 대상자를 도우면서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성이 성장하게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기는 힘들다. 겸손함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뿌리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은 일은 자아효능감을 높여준다.

자식들에게도 말하기 꺼려하는 부분을 들어주고 해소해 주기도 하고 남은 시간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어차피 살아야 할 삶이 덜 버겁게 지지해 주다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내가 아직 이 바닥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마냥 해맑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자세를 유지하며 대상자를 대할 것이고 이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또 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인생 2막에서 만난 요양보호사라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내 남은 삶에 정서적 포만감을 채워줄 일로써 죽을 때까지 끌고 갈 것이다. 여든의 할머니가 백세 어르신을 돕는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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