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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Feb 02. 2022

길잡이에 목마른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최근 책 <질서 너머>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이야, 언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음은 조던 피터슨이 출판한 책 <질서 너머> 내용의 일부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격려와 길잡이에 목말라 있는지 약간의 격려와 길잡이만으로도 얼마나 그들이 좋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난 당신이 해낼 줄 알았어" 하는 말은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긴 여정에서 좋은 출발을 하도록 힘을 준다.


나는 “넌 이대로 괜찮아”, “넌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야 돼.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야” 하고 말하는 친구를 가장 경계한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은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이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말, 있는 그래도 소중하다는 말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올바른 것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당신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이유는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며, 혹은 후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불행을 내 선에서 끊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행동하기 때문에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다.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맞다면 다음과 같은 말도 성립해야 한다.

“수많은 악질 범죄자들은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최근 난 동생에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동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러다가 힘들어져서 자살하면 어떻게 해?” 아마, 더 나은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소중하지 않다는 말에 상처를 입은 듯싶었다.

 

이제 막 20살이 된 동생은, 20살이 되기 이전부터 아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 사람과의 관계가 두려워 아르바이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한심한 내가 사회에 불만만 품었던 것과 달리, 스스로 삶을 개선시키고자 아르바이트를 2개나 뛰며, 상황을 개선하고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동생. 

(목적이 무엇이 되었건,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자체는 굉장히 주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동생을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아니 존경한다. 다만, 동생은 열심히 살고 있지만 좋아하는 게 없어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방황은 종종 우울을 동반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방황하는 것이 모자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방황하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도이다. 그것이 나쁜 방향만 아니라면 말이다. 고로 말해주고 싶다.


동생에게


"있는 그대로 괜찮은 존재는 없어. 하지만, 넌 지금 이대로 괜찮아. 그리고 소중하지. 네가 소중한 이유는 이렇게 올바른 길을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야.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야.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네가 그 증거이지. 넌 네게 주어진 혼돈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으로 개선시킬 힘을 가지고 있어. 방황하고 있더라도 네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을 찾으려고 하잖아. 지금 잘하고 있고, 분명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길잡이에 목말라하고 있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으니, 불필요한 고통 (자책, 공허, 불안)을 느낀다. 

“이 길로 가야 한다”라고 정확하게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이 정도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바른 것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갈래길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조던 피터슨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난 당신이 해낼 줄 알았어”


어차피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거라면, 불필요한 고통은 덜어도 되는 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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