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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Mar 05. 2023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지긋지긋하다. 굿바이.

김광석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원음'이라는 법명을 얻었는데, 둥그런 소리로 사람들의 애환과 고뇌를 달래주고 품어 안으라는 뜻일 거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선 가사를 보자.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큰딸 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이 노래를 김광식(김광석이 아니라 철학자 김광식이다)이 철학으로 푼다. 넥타이는 절제와 질서를 상징하며 통제와 구속에 연결된다. 이 노래에서 김광석은 '넥타이 철학'을 말한다. 


헤겔의 '자유 철학'은 김광석의 '넥타이 철학'의 근거를 제공한다.  


헤겔은 자유롭게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문제는 나를 위한 삶이 공동체를 위한 삶이 될 수 있는가다. 모두가 자유를 추구하면,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자유를 확장해 나간 과정이다. 왕정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롭고, 귀족정에서는 몇몇 사람만이 자유롭다. 하지만 민주정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 모두가 자유로운 공동체를 이룰 때, 개인의 자유 추구는 곧 공동체의 자유 추구가 될 수 있다.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공동체가 실현되면,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과 합치된다. 이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엄마는 늘 자신은 뒷전이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왔다. 엄마도 한때는 꿈과 낭만이 있던 여인이었음을, 즉 자유로운 존재였음을 우리는 외면해 왔다. 엄마는 애잔하지만, 우리는 나쁜 사람이다.  


세상은 늘 불공평하다. 누구는 평생 희생하고, 다른 누구는 누구의 희생 덕분에 자유롭게 산다. 그런데 정말 누구가 자유롭게 살까? 헤겔은 아니라고 말한다. 빚지고 사는 삶은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빚지지 않은 자유라야 행복할 수 있다. 서로 빚지지 않은 공동체가 이상적인 공동체다. 


홀로 먼 길을 떠나는 여인은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은 무지하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왜 한마디 말이 없냐며 흐느낀다. 하지만 아내는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남편은 듣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남긴 말은 단 한 마디,

굿바이!

지긋지긋하고 후련하다는 뜻이다. 


지금부터는 내 생각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줄곧 공감하며 듣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라는 마무리 가사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로 끝내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 슬픔의 정서가 더 지속되고, 여운이 남는 노래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죽은 아내를 향해서 남편이 잘 가라고 하며 노래가 끝난다. 네가 나를 떠났으니 나는 새 여자를 찾아보겠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내가 이상한 건가? 


김광식은 이 노래를 '넥타이 철학'이라고 했는데, 주체와 객체 관계가 혼란스럽다. 즉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사람은 남편이니, 구속당하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러나 김광식은 넥타이의 구속을 아내에게 관련짓고 있다. 키워드를 잘못 고른 것 같다. '뜬눈'이나 '눈물'은 어땠을까? 그러면 이 노래의 철학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튼 이 노래는 우리에게 아내보다는 엄마를 더 생각하게 한다. 엄마는 가족들 모두가 자유롭게 살라고 자신을 희생한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추억하면서 느끼는 감정도 엄마로서의 아내에게 향해 있는 것 같다. 막내아들 대학시험, 큰딸 아이 결혼식 등의 노랫말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어머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애잔하고 더 숭고하고 더 미안한 말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 문장이다. 이 문장 속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다. 어머니! 우리를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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