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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물들다 Apr 27. 2023

그곳에서는         

아버님, 그곳에서는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IMF, 온 나라가 한순간에 침몰되어 버린 사건, 은행들이 무너지고 대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충격이었다. 사회적 파장은 기반이 취약한 패션계를 강타했다. 그렇게 파리까지 진출했던 본사가 부도를 맞았다. 그때 웬만한 연립은 살 수 있었던 보증금과 사업기반이 모두 무너졌다. 소송을 걸고 법적대응에 들어갔지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을 가눌 수가 없어 많은 것이 소멸되어 갔다. 남편이 조용히 뒷수습을 시작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갔다.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좋지 않은 일은 겹쳐서 온다는 어른들의 말을 실감했다.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을 다녀야 하는 일이 내 몫이라, 다시 시작한 브랜드 샵을 직원한테 맡기고 병원을 다니며 정밀검사를 받으시게 했다.      

위암 4기.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동안 그 고통을 참으시며 견디셨을까? 육 남매 자식들 은 누구 하나 아버님의 그 고통을 예사로 넘기고 있었던가, 맏며느리 인 난 내 자식 내일 만을 위해 부모에게 등한시했던 시간들이 후회와 자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슬픔이 복받치니 가슴에 통증이 왔다. 선생님을 붙잡고 사정했다.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제 부모이시면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을 드리고 옆에서 편하게 모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하겠다 하시면 항암을 하실 수는 있지만 완치가 아니라 수명연장이고, 부작용 때문에 더 견디시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쏟았다.


그때 항암치료는 개발단계여서 지금처럼 건강보험 혜택도 없을뿐더러 한번 투약 비용이 한 달 급여의 80프로와 맞먹는 금액이었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투약이 시작되자 아버님은 구토와 통증으로 드시질 못하셨다. 


  누구 음식도 못 드시면서 그나마 며느리인 내가 해주는 음식만 조금씩 드셨다. 

호박죽에 옥수수를 갈아 넣어 끓이고, 녹두죽에 견과류를 갈아 넣어 끓였다. 

호박식혜를 만들고, 냉이에 우렁이와 바지락을 잘게 다져 넣은 된장국에 차돌박이를 쪄서 곁들여 드렸고, 강된장에 우렁, 바지락, 새우, 낙지를 다져 넣어 묽게 끓여서 호박잎을 데쳐 드리고, 백숙에 겉절이를 심심하게 무쳐서 곁들여 드리면 조금씩이지만 달게 드시곤 하셨다.      

맏며느리기도 했지만 친정어머님이 음식 장인이셨던 터라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보고 기억했던 탓일까 무슨 음식이든 보면 웬만큼 만들 수 있는 눈썰미도 있었고 음식에 관심도 많았다.


이렇게 11개월을 사시다 영면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붙잡고 고생했다 하시며 유언을 하셨다. 산과 과수원은 네 몫이고 현금은 어머님 평생 쓰실 만큼 있으니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말고 나머지 동산과 논, 밭들은 알아서 동생들을 나누어 주어라 하신다. 


모든 걸 준비하시고 떠나시는 아버님 앞에 자식들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슬픔을 가누고 허공을 바라봤다.


    



시골을 내려가면 안채보다 사랑채에 머물길 좋아했다.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하얀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이 정겨웠고 할머님, 어머님의 손길이 머물렀던 툇마루의 군데군데 조금씩 금이 가고 낡아가고 있던 그 나뭇결이 매끄럽고 좋았다.      

누르스름한 창호지가 발라져 있던 여닫이 문의 쇠문고리를 잡을 땐 겨울엔 손이 쇠문고리에 붙을 듯이 아린감각이, 여름엔 서늘함이 가슴까지 시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황톳빛 장판이 반질반질했고 아랫목은 오랜 세월 구들장이 방안을 온기로 덮였음을 알 수 있게 거무스름 탄 자국으로 나를 반겼다. 국화꽃이 넣어진 창호지의 들창을 열면 빽빽한 대나무 숲이 쏟아져 들어온다.      

새벽녘 군불을 지피시는 아버님의 헛기침 소리에 눈을 뜨면 들창에 비추이는 그림자가 새들이 앉아있는 형상으로,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간간히 비추이는 햇빛 속에 새들이 푸드덕거리듯 날아올랐다.  그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이 참, 행복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손을 볼 수 없어 사랑채는 을씨년스럽게 아버님과 함께 점점 추억 속으로 슬프지만 소멸되어 옅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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