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했던 날처럼

by 나를찾아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광고 속에서 들려왔던 소설 제목이었는지, 어느 광고

카피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 따라 그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어젯밤, 저녁을 거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일까. 아침에 평소처럼 눈을 뜨고,

메일과 알림을 확인하고, 습관처럼 SNS를 훑다 보면 상념이 밀려온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들. 마치 과거의 어느 날, 정확히 이 기분을 느꼈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이

기시감.

처음엔 씁쓸하고 외로운 감정이 엄습한다. 그러다 어느새 이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싶은

충동이 찾아온다. 만약 이 무거움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다 보면, 결국 나는 또다시 과거로

도피할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심호흡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몸을 스트레칭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작년 상담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처럼, 온전히 내 호흡에 집중하면서 몸의 감각을 느껴보고, 마음속

잡생각들을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지금 내게 가장 시급한 건 ‘출근’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오히려 생각을 덜게 만들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그날의 일정만 생각하며 움직였다. 약을 챙겨 먹고, 씻고, 옷을

입고, 출근길에 올랐다. 지하철에서는 전자책을 읽었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틈날 때마다 생각했다.

‘지금 내 이 상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결국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작년 연말 마지막으로 뵈었던 상담사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자.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에 상담 가능한 시간 있을까요?’

문자를 남겼고, 선생님께선 반가운 마음을 담아 회신해주셨다.

덕분에 당장 내일 저녁,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린다기보다는, 늘 누군가의 조언과 사회의 일방적인 기대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스스로 답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삶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결정을 미뤄왔고, 고민을 피하는 쪽을 택하며 살아왔다.

배우자는 나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보다 주도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런 다름은 종종 충돌을 낳았고,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는 가급적 그녀의 의견에 맞추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웬만한 일들은 큰 갈등 없이 넘어갈 수 있었고,

다만 술자리에서 내가 도를 넘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마다 큰 이슈로 번지곤 했다.

이제는 그런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결정하고, 움직일 때다.

그래야 나도 바뀌고, 내 미래도 바뀔 수 있다.

아마도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했던’ 그 순간처럼,

나 역시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결심한 하루.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 감정을 하나씩 정리해가고 있다.

그리고 믿고 싶다.

나는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