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실에 있다 보면 온갖 지역에서 올라오는 환자들을 볼 수 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는 기본이고, 제주도, 저 남해 섬들에서까지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올라온다.
아이에게 최고의 진료를 받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올라오는 것일 테다.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어떤 선택이 옳을지 재보고 재보면서 돌았다.
조금 더 좋은 말을 기대했던 것.
그러나 이내 비슷한 말을 듣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더는 긍정적인 결과를 달라고 구걸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물어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던 그 말, 손 한번 잡아주고 싶었던 그 순간.
소아 응급실에서 듣기에 제일 슬픈 말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들은 뭔가 하나 진단받으면 혹시 임신 때 뭘 해서 혹은 못 해서 그런지 세세한 기억까지 다 찾아 자책한다.
"임신 중에 제가 화를 낸 적 있는데요. 제가 좀 예민했었는데, 제가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다.
여기선 '물론 조금은 영향이 있을 수 있는데' 와 같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다.
그 작은 확률의 미미한 말들은 평생 엄마들 마음에 못처럼 박혀서 아이를 볼 때마다 아프게 휘저어 놓을 테니 말이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 것 뿐이다.
세상엔 그냥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병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냥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르게 아이가 조금 아플 뿐인 거다.
동네 의원에서 흉부 x-ray를 찍은 엄마가 왔다.
오른쪽 종격(mediastinum)에 너무 명확한 덩이(mass)가 있다.
물론 소아에서 흔한 질환이 아니기에 당황하고 황당했을 수 있다.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경고를 해야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악성 종양인 거처럼 설명하면 안 된다.
물론 과도한 희망을 주는 것이 더 큰 좌절을 줄 수 있지만 그래도 절망을 먼저 주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가능성이 있다 정도일 뿐이다.
아무것도 진단되지 않은 상태에서 겁만 덜컥 주면 다른 검사를 받기 전까지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병은 양성 일수도, 물론 악성일 수도 있다.
일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쁜 상상하지 말라고, 환자와 보호자의 불안함을 달래주는 것도 역할 아닐까.
종격의 덩이 때문에 온 환자 엄마는 그것을 발견한 3일 전, 그 순간부터 밥을 한 끼도 못 먹고 아이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닌 모양이다.
엄마는 쓰러질 듯 창백했고, 입도 바짝 말라 있고, 혼도 반쯤 나가 있었다.
아이는 아직 증상이 없어 건강하고 토실토실한데, 엄마가 꼭 환자 같다.
다행히 컴퓨터단층촬영(CT) 소견상 mature 타입 기형종(teratoma) 같다는 소견을 들었고 수술 후 조직 검사 소견을 봐야 하지만, 양성일 거 같다고 했다.
엄마는 울었다.
엄마에게 아이가 수술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 때까지는 나쁜 상상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체력을 만들어 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다.
지나치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나쁜 것을 상상하다 보면 정말 치료나 수술이 필요할 때 환자는 회복을 못 하고 보호자는 간병할 수 없다. 병을 진단하는 것은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다.
걱정보다는 정보를 모으기 위한 진단 방법을 선택하고 치료 방법을 고민하면서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사람마다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이지만,
병원 안의 작은 세상은 더더욱 그렇다.
소아 환자에게 발달의 정도에 관해 묻는 것은 당연한 진료 과정이다.
당연히 기저질환에 지적장애, 성장지연, 신경학적 장애가 있으면 발달이 늦겠지만, 그렇다고 대충 늦겠거니 하고 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어떤 엄마도 아이가 못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때 버벅거리거나 어색하게 굴면 그게 더 상처가 될 수 있다.
병원에서만큼은 지연 장애를 병으로 봐줘야 한다.
진료 과정의 일부로 늘 질문하듯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묻는다.
대답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자연스레 받는다.
절대 두세 번 되묻지 않는다. 표정도 바뀌지 않는다.
"어디까지 가능하다는 말씀이죠? 네. 잘 알겠습니다."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듯이 가끔 눈을 맞춰주고, 마지막엔 살짝 웃음을 지어주며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아이의 발달 상태부터 이상까지 모두 다 품을 수 있는 장소가 병원이다.
치열하게 비교하는 사회 속에서 부모가 속 편히 아이의 모든 발달과 걱정 사항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은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인 듯싶다.
하도 선천적 심기형, microcephaly, NB, 각종 종양 등 기저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하루이틀 열나서 온 환아들이 우렁차게 울어대면
그게 그렇게 건강해 보여 좋을 수가 없다.
소아응급실에서 울지 않는 아기가 제일 무섭다.
아기들은 안 아팠으면.
>>>
8년 전 써두었던 글을 보았다.
치열하게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시절임에도,
소아 응급을 하기 전부터 무척이나 소아와 그 보호자들에게 마음이 갔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