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같은 일상
김영탁 작가의 소설 '곰탕'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불량한 설정의 고등학생 아빠 '이순희'가 등장한다. 순희는 '뿅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뒤에 '강희'(여자친구)를 데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부산을 돌아다니는데, 소설의 한 장면에서는 '오토바이가 있으면 동네의 구석구석, 차로는 닿지 않는 골목들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우습게도 난 이 문장에서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1년 전, 나는 앙증맞은 베스파를 하나 들여왔다. '뿅카'와 다른 점이라 하면, 이 친구는 끝까지 당겨야 70km/h정도의 속도가 나오는 비교적 안전한 스쿠터라, 뿅 달릴 수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부산 골목이 아닌 서울의 골목들을 쏘다녀야 한다는 것 정도.
난 이 스쿠터에 '베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순희처럼 여러 곳을 베춘이와 함께 쏘다니기 시작했다. 낙후된 용산역 뒷골목, 한옥과 핫플레이스 그 사이 어딘가의 서촌 골목, 경사 때문에 베춘이가 많이 힘들어하던 해방촌 골목. 서울 밖으로는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 새 8000km를 가까이 달렸다. 덕분에, 나는 일상이 여행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기름값, 주차 고민할 것 없이 옷을 입고 나가기만 하면 동네에서 벗어나 매번 처음 보는 곳들을 유영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에 올라타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잊고 오로지 지금에만 집중하게 된다. 날씨와 바람, 하늘과 풍경, 도로 위의 차들만이 나의 신경을 뺏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목적지에 가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찾는 것.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 없이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 여행을 가야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창성동에 있는 작은 서점에 들러 이름 모르는 작가님들의 책을 구경하고, 잠깐 앉아 글을 적어 내려간다. 오후에는 또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베춘이에게 어떤 바람소리를 들려줄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