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그마한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개인전을 끝내고 나니
보관해야 할 작품들과 그림 도구들이 집 안을 가득 채웠고
결국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원룸을 작업실로 계약했다.
매우 오래되고 낡은 건물의 원룸이지만
나는 정말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왜 그토록 멋져 보였는지, 지금도 분명히 기억난다.
작업실에는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갖춰져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 있다.
이건 내 인생에서 길이길이 기억될 빅 이벤트였다.
비록 벽지는 오래되고 바닥도 낡았지만
나는 이 작은 공간을 나만의 취향으로
천천히, 아주 정성스럽게 채워가는 중이다.
창가에는 작은 몬스테라와 내가 어렸을때부터 가지고 있던 스노우볼, 작은 촛불 조명이 반짝인다.
한쪽 벽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 내 굿즈 엽서들, 수많은 이미지들이 붙어 있다.
향은 적당한 우디향의 디퓨저로... 그리고 작업과 함께 하는 음악을 채운다.
나에게 작업실을 꾸민다는 건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으로 예술을 대하고 싶은지’를 매일 확인하는 일이다.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감정을 머금고, 좋은 작업이 태어날 수 있도록
이 공간을 나에게 다정하게, 평온하게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매일 그림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이 기쁨은 언제나 ‘슬픔’과 함께다.
작업실엔 매달 고정비가 따라온다.
월세, 관리비, 전기료, 재료비…
이 모든 건 작업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찾아오는 고정된 숫자다.
나는 다행히 9-6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아직까지는 감당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 작업실’이 생긴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그건 좋은 일이었지만 동시에 고된 일이기도 하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마다
쉬는 날 하나 없이 작업실로 향하는 나는
하루하루 에너지를 110% 이상 써버리는 일상을 보낸다.
그렇게 반복되면
체력은 서서히 바닥나고 컨디션은 자주 엉망이 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우울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림도 일도, 나 자신도 어설퍼 보이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자책이 조용히 찾아온다.
그래서 작업실은 나의 기쁨이자 슬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작업실이 좋다. 정말 많이.
이 조그마한 원룸 안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소한 방식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리고 그 하루 끝에서 고민하고 또 그려낸 그림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인가!
내 취향이 담긴 나만의 공간에서
내 감정과 생각이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작품을 누군가가 좋아해줄 수 있다면 나무랄게 없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이 공간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기쁨과 슬픔, 벅참과 피로, 자유와 책임이 겹쳐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벌써부터 퇴근 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