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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02. 2024

알코올? 논알코올?

   반짝반짝 새 구두를 신으면 기분은 좋지만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벗겨지고 새끼발가락이 짓눌려 한동안 고생을 합니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의 송도캠퍼스 기숙사 생활도 그렇습니다.  


  송도캠퍼스에 갇힌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은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교내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교내 생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삽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캠퍼스타운 역까지 걸어서 삼십 분 정도가 걸리고 걸어가는 길은 한없이 적막하고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설사 그렇게 탈출을 해서 시내로 나가봤자 신촌같은 젊음의 분위기는 좀처럼 없습니다.


   그렇지만 젊음은 어떤 환경에서도 즐거움을 곧 찾아냅니다.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은 어디서 놀까요? 트리플 스트리트('트스’라고 불립니다)에서 놉니다. 트스는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에서 십 분 남짓 걸으면 나타나는 번화가입니다. 십 대와 이십 대들의 성지라는 엄청 큰 다이소도 있고 옷가게, 영화관, 음식점, PC방, 술집, 카페들이 집결돼 있는 거리인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웬만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 이만 원은 금세 뚝딱이니까요. 그래도 시험이 끝나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싶을 때나 미팅이 있는 날까지 송도캠퍼스에 갇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술자리는 한번 시작하면 질긴 면발처럼 좀처럼 끊기가 힘듭니다. 동네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면 막차 시간 때문에 연실 시계를 흘낏거릴 일도 택시비나 대리운전 비용을 지불할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술자리가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가 발 닦고 자면 되니 세상 편하죠. 연세대학교 신입생들도 그런가 봅니다. '노상'을 즐기는 것을 보면요.


  원래 '노상'은 '길거리'를 뜻하는 명사지만 송도캠퍼스에서는 '노상하다'라는 동사로 파생되어 있습니다. 술을 사서 캠퍼스 내에서 마시는 것을 노상한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지고 기숙사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근처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소란스러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기숙사 저층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항의는 더 잦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소문인지 사실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학생과 술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라는 생각은 이제 틀렸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마무리되면 총학생회, 단과대, 학과 오리엔테이션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학과 오리엔테이션 출석률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앱으로 참가 신청을 합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지, 참석한다면 행사까지만 참석할지, 식사까지만 참석할지, 2차까지도 갈지 선택합니다. 뭐든 선택입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비용을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로 계좌이체합니다. 요즘 학생회 계좌는 모조리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더군요.


   그런데 2차에 참석한다는 항목을 선택하고 나서도 남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알코올, 논알코올입니다. 술을 권하는 일 따위는 봄비에 황사 먼지 쓸려 가듯 말끔히 사라졌나 봅니다. 알코올조 학생들이 열심히 술병을 나를 때 논알코조 학생들은 테이블에 세팅된 기본 술병에도 거의 손을 대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들끼리 자체적으로 카페에서 2차를 하기도 합니다.


   4월에는 양평으로 엠티를 갔습니다. 그때도 알코올조, 논알코올조 선택이 가능하더군요. 항상 논알코올을 선택하는 딸이 엠티를 다녀와서는 한 마디 불평을 하더군요. 알코올조 아이들의 토사물을 논알코올조 아이들이 치워야 했다고요.   


  대학 신입생들의 과음, 혹은 선배들의 술 강권 문제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논알코올도 당당한 선택입니다. MZ세대의 합리적인 단면을 보는 것 같긴 한데 뭔가 허전합니다. 매일 면도하는 일이 남자들에게는 굉장히 귀찮은 일이지만 아예 수염이 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라고 말하면 '라떼는 말이야'가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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