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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12. 2024

청소 과목 개설

   코로나라는 고약한 병은 중국 어딘가에서 발병했다지요. 조만간 그보다 더 고약한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모두 미리미리 마스크를 준비합시다. 그 병의 발원지는 대한민국 인천의 송도로 예측되니 질병관리청과 세계보건기구의 선제적 감독이 필요합니다.


   긴 머리의 구불구불한 웨이브가 자연스러운 여학생이 있습니다. 키는 좀 작지만 웬만해서는 소화하기 힘든 배꼽이 보이는 크롭티와 헐렁한 청바지, 굽 없는 운동화가 좋은 비율로 어울립니다. 컬러 렌즈를 넣은 두 눈은 이미 큰데 매섭게 올려 그려진 아이라이너 덕에 더 부리부리합니다. 라인이 예쁜 코도 하이라이트를 발라서 더욱 오똑해 보입니다. 두 가지 틴트를 레이어드 하여 칠한 입술 색도 옅게 바른 쿠션 색깔과 잘 어울리고 아무리 봐도 효과가 없어 보이는 턱선의 쉐도우도 잘 발려 있습니다. 눈두덩의 아이섀도가 다소 진해 판다곰을 연상시키지만 전체적으로 웰메이드 한 외모입니다. 딱 봐도 엄청 가꾼 모습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학생이 머문 자리는 절대 아릅답지 않습니다. 책상은 본연의 기능을 잃고 화장대가 되어 있습니다. 큼직한 파우치가 열려 있고 그 속에서 빠져나온 온갖 화장품들이 뚜껑이 열린 채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뚜껑도 열어 버리는 양끝에 검은 물이 든 면봉 몇 개, 울긋불긋한 색으로 염색된 화장지 조각들, 막대의 길이와 털의 숱이 제각각인 여러 개의 붓들, 속눈썹을 찝어서 치켜올리는 금속의 뷰러, 아이섀도 팔레트에서 떨어진 형형색색의 가루들, 온갖 것들이 점심시간 손님들이 빠져나간 식당의 테이블처럼 지저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송충이입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브이자로 벌려진 가위날에 송충이 두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시커먼 털이 보송보송한 작은 송충이가 두 마리나요!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정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죽었는지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살짝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속눈썹이었습니다. 반원 모양의 속눈썹의 가운데만 잘라서 붙이고 남은 양쪽 찌끄러기였습니다. 송충이와 똑 닮았습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놀라는 강도는 약해졌지만 화장실의 수납장을 열었을 때 아래 칸에서 송충이를 발견하면 아직도 이삼 초는 숨이 멎습니다.


   방바닥에는 옷과 양말, 스타킹, 속바지 등이 내용물이 번데기의 허물처럼 스르륵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의 주인은 나비가 되어 잠실로, 신촌으로, 이태원으로 훨훨 날아갑니다. 가방 안도 분리수거가 안 된 쓰레기봉투를 연상시킵니다. 그 속에 아무렇게나 넣어져 있던 이어폰은 원래 흰색이었는데 누가 보면 회색인 줄 압니다. 침대 머리맡 좁은 공간에는 눈알이 몇 개 굴러다닙니다. 바싹 말라 손대면 톡 하고 부스러지는, 눈동자 모양과 무늬를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렌즈 잔해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수천 명 모여 있는 곳이 기숙사입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단언컨대 지저분한 방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제대로 된 청소는 학생들이 입주하기 전에 한 번 있었고 다음 번 대청소는 학생들이 방을 빼는 6월 말이 지나야 있을 예정입니다. 그중의 한 방을 예로 들자면 세 명의 여학생이 사는데 바닥을 닦는 청소는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주 필수품목에 실내 슬리퍼가 있었나 봅니다. 미니 청소기를 성의 없게 웽 돌려 여학생 셋이 떨궈 둔 어마어마한 양의 머리카락만 겨우 제거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에서 음식물 먹는 것은 금지한다, 빵이나 커피 정도만 가능하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들 바퀴벌레는 질색팔색하니까요. 그 방의 모습, 특히 화장실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면 고개를 흔들어 얼른 지워버립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남학생들 방도 쓰레기의 종류가 좀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방이 대학교마다 수백 개, 어쩌면 수천 개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만 해도....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는.... 아무래도 선제적 감독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류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을 구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학생도 닭장보다 더한 감옥같았던 재수학원 시절보다 대학 기숙사에서 감기와 비염에 걸리는 횟수가 급증했거든요.

   요즘 대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 중 패스논패스로만 평가하는 수업이 꽤 있습니다. 연대에서는 대표적인 것이 채플이고 태권도 같은 운동 과목, 또 연세 인권 어쩌고저쩌고 하는 과목도 그렇습니다. 조만간 수강 필수인 기독교 수업도 패스논패스 과목이 될 거란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기숙사 점검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하고 패스논패스로 평가를 하면 어떨까요? 기숙사 청소를 조별 과제라고 설정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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