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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14. 2024

대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은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성년이고 어른이고 다 컸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돌을 좋아합니다. 아예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면 몰라도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있던 관심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5월은 바야흐로 대학 축제의 시즌입니다. 신촌캠퍼스는 물론이고 귀양가 있는 송도캠퍼스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신촌 일대가 쓰나미처럼 파란 물결로 뒤덮이는 연대 축제는 아카라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재학생도 티켓을 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학기 초에 4년 치 학생회비를 한꺼번에 내면 아카라카 티켓팅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혹시 내년에 서울대로 옮겨 갈 계획이 있어도 일단 4년 치 학생회비는 낼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티켓팅을 못한 재학생이나 연대생이 아니지만 아카라카를 꼭 보고 싶다면 암표를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거의 스무 배가 넘는 가격으로 몸값이 오른 티켓이 재판매된다는군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이돌의 출현입니다. 엄정화나 이효리, 싸이처럼 부모 세대에게 익숙한 연예인들도 인기지만 뜻도 모르고 외우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아이돌들이 대학 축제의 꽃이 되었습니다. 초청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 것 같은데 아깝지 않냐고 물으면 전혀 아깝지 않다는 대답이 총알같이 날아옵니다. 하긴 며칠 전 갔던 냉면집은 벽지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임영웅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사장님이 광팬이라서 할아버지 사장님이 모시고 콘서트도 네 번이나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스무 살 남짓의 청춘들이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 못마땅한 일은 아닌가요?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내신 점수에 골몰합니다. 학점이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요. 생기부는 없어도 스펙 역시 쌓아야 하고요. 그런데 대학 학점이 더 고약한 이유는 리셋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내신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사라지고, 고등학교 내신은 대학에 입학하면 어디에도 쓸모가 없죠. 유통기한이 딱 3년뿐인데도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위해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씁니다. 반면 대학 학점은 스토커처럼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습니다. 대학원을 갈 때도 취직을 할 때도, 이직을 할 때도 학점이 중요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대학생이 되어도 시험 기간이면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하는, 그보다 더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한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로스쿨 진학이 목표라면 고등학교를 매우 열심히 한 번 더 다닌다고 생각해야 한다는군요. 4.3이 만점이라면 평균 4.0은 넘어야 마음이 놓이니까 일학년부터 마라톤이 아니라 백 미터 경주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답니다.


   또 여대는 학점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고 합니다. 공학의 경우 아무래도 남학생들 일부가 일학년을 즐기고 군대에 간다는 생각을 하며 베이스를 깔아 주는데 여대에는 그런 일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학점 때문에 사교육은 받지 않으니 부모님들은 좋습니다. 참, 요즘은 족보를 돈 주고 사니까 소정의 비용은 지출됩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교우 관계가 신경 쓰입니다. 대학교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진정한 친구의 정의는 다양합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척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맨얼굴로 만날 수 있는 친구, 취한 모습을 보여도 되는 친구처럼 말입니다. 에타(에브리타임)라는 앱을 보면 신입생들을 위한 친절한 조언이 많습니다. 절대 자기에 대해 말하지 말아라,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아, 그렇구나!'라고만 대답해라.... 그런 글들을 읽다 보면 대학교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진정한 친구 같은 거대 담론 말고 소소한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 혼밥을 못한다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아는 신입생을 보니 전공필수 과목이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교양과목이므로 같은 과 학생이라고 해도 시간표가 천태만상입니다. 당연히 밥 먹는 시간도 제각각입니다.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에는 모여서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점심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혼밥을 하거나 대충 빵으로 때우거나 굶거나 해야 합니다. 저녁밥도 매일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나 친구들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어떤 날은, 혹은 매일 혼자 먹는 학생도 있습니다.


   신촌캠퍼스로 오면 선배도 있고 이대에 다니는 어릴 적 친구도 있고 저녁은 집에서 먹어도 되니 혼밥 문제가 좀 해결될까요? 편하게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기기를 바라야 하는지, 혼밥을 잘하게 되기를 바라야 하는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학생은 참 좋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항상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대학교 입학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원하는 일과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시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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