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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위시 Sep 27. 2022

난생처음 구급차를 부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스스로 생각하던 나의 가장 큰 장점은 "튼튼하다"는 점이었다. 늘 여리고 작았던 동생과 다르게, 키가 작기는 했지만 통뼈였던 나는 흔한 감기조차 앓아본 적이 별로 없었고, 고열을 앓아본 적도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고생했던 건, 음식을 잘못 먹어 장염에 걸려 며칠을 설사에 시달렸던 것이 전부 일정도로, 나는 스스로 매우 건강하고 힘이 세다 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내 자궁은 늘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단지 그걸 몰랐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첫 생리가 굉장히 빨랐다. 무려 초등학교 4학년, 만 9세에 첫 생리를 시작했다. 정부에서 성교육을 통해 생리에 대해 소개를 하는 것이 초등학교 5-6학년일 시절이다. 생각해보면 자고 일어나서 빨갛게 피가 샌 팬티를 빨면서 "나 죽을병 걸렸나"라고 숨죽여 울던 내 유년기가 귀엽긴 하다. 문제는 그렇게 너무나도 이르게 시작된 생리가 어린 나에게 너무 부끄러웠다는 점이다. 나 외에 또 생리를 하는 친구를 만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생리대를 차는 것도,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버리는 것도, 내게서 피가 나온다는 사실조차 너무너무 부끄러웠고, 이게 자주 나오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그래서였는지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불규칙한 생리나 생리양, 생리통에 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고, 그게 추후 임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줄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난임 의사를 만나면서도 약을 먹으면 꼬박꼬박 생리를 하니까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준비를 하고 회사를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변의가 일어서 화장실부터 갔다. 그런데 대변을 보고 나서도 오히려 배가 더 아파오는 것이었다. 마치 장이 꼬이는듯하고 식은땀이 줄줄 나는데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할 통증이 아랫배를 쥐어짜듯 덮쳐왔다. 출근시간이 30분 남짓 남아서 일단 회사에 전화하는데 비명이 절로 나왔다. 비명을 들은 회사 동료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911을 부르라고 했다.


두 번째로 전화한 곳은 남편이었다. 여전히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무슨 포즈를 취해도 배가 끊어질 것같이 아팠다. 이미 직장에 있던 남편은 바로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그제야 나는 911에 전화를 했다. 비명을 들은 구급요원은 집에 타이레놀 없냐고 물어보았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타이레놀 두 알을 입에 털어 넣고, 구급대원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나갔다. 왜 갑자기 배가 아프냐고 묻는데 "대변을 보았다"라고 대답을 했다. 구급대원이 혹시 생리 중이냐고 물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날 아침 생리가 시작되었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화 상대방은 집주소를 물어보고 구급대원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약 10분 뒤 신랑보다 먼저 구급대원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아프던 배가 타이레놀 먹었다고 그새 조금 괜찮아진 것이다. 절로 나오던 비명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했던 몸이 식은땀이 여전히 날 지언정 두드리는 문소리에 문고리를 잡고 문 열어줄 정도로 허리가 펴졌다. 구급대원들은 오자마자 기본 혈압 등을 재고 기본검사를 실행해주었고, 그러면서 이상하게 점점 더 고통이 줄기 시작했다. 911에 전화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몸이 괜찮아지는 시점에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얼굴이 새파래져서 달려온 남편은 내 손을 붙들고 내 상황을 물어보았고, 나는 이제 괜찮아졌다고 대답했다. 원래 두 알만 먹으라던 타이레놀을 4알이나 한꺼번에 먹어서였을까, 아님 평소에 약이 거의 필요 없던 내 몸이었기에 빠르게 받아들여서였을까 약효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돌아버린 것이다.


구급대원들은 그래도 그렇게 비명을 지를 정도였으면 각종 검사를 해야 한다며 나를 구급차에 싣고 근처 병원에 데리고 갔다. 피검사도 해보고, 초음파도 해봤다. 자궁에 무슨 혹이라도 있는 거 아닌가 체크한 것이었는데 아주 작은 물혹이 있었지만 그걸로 갑자기 이렇게 아플 수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검사가 다 끝나고 머쓱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가 오더니 "이제 30대가 되었네?"라고 입을 떼었다. 그러면서 평소 생리통이나 생리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냐고 이것저것 질문했다.


나는 생리가 늘 불규칙했으며, 양도 때에 따라 달랐고, 생리통은 거의 없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약을 먹을 정도의 생리통을 겪어본 적이 전무했다. 주변에 생리통 때문에 고생한다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내게는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 같았다. 그런 내 얘기를 한참 듣던 의사는 "음 그래, 젊었을 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여자 몸이라는 건 나이를 먹으면서 바뀌는 거거든. 내가 보기엔 30대에 접어들면서 없던 생리통이 생긴 것 같아. 그것도 강력한 걸로. 앞으로 생리할 거 같으면 꼭 타이레놀을 미리 먹으렴"이라고 응수했다.


나에게는 날벼락이었다. 한 번만 아프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매달 이렇게 아플 거라고??? 내가 난생처음 구급차를 부를 정도의 고통이 고작 "생리통"이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 진단인가?라고 의사를 의심했다. 그런데 의사를 의심한 게 무색할 정도로 실제로 그 뒤로 같은 고통이 매 생리 때마다 반복되기 시작했다. 생리의 시작은 설사를 동반한 대변과 미친듯한 생리통과 함께 시작되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없던 "생리 전 증후군"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몇 년이 더 지난 후에는 급기야 "배란통"까지도 생겼다.


생리통, 생리 전 증후군, 배란통 등의 원인을 찾아보니, 원래대로라면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여성의 몸이 그런 것을 하지 않고 지나쳤기 때문에 자궁이 늙어가며 시위를 하는 것이라 했다. 임신과 출산을 하고 나면 이런 고통이 줄어든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니,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임신과 산이 아닌데! 거기에 이런 괴로운 고통까지 동반된다고? 나는 못내 내 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나는 노력하고 있는데 네가 임신을 안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럼 이런 고통이라도 없어야지. 왜 나는 쌍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니,라고.


그랬다. 여자의 몸은 의외로 우리가 생각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노화"가 시작된다. 내게는 만 31살이 벌써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면 의학적으로 "노산"으로 분류가 된다. 요즘 세상에 30대 중반을 "늙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몸은 사회가 생각하는 우리보다 훨씬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를 원한다면 이 시한부적인 노화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시기를 놓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의학의 도움으로 따라잡긴 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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