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한줄기 빛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가 어김없이 찾아와 입맛을 떨어뜨리는 요즘. 시원한 냉면 한 그릇으로 힘없는 몸을 달래 본다.
여름의 대표 음식인 냉면은 이름 자체부터 더위를 거부하는 단호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지니고 있다. 열이 불처럼 이는 철에 냉면 국물의 전율하는 짜릿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면 어느덧 체온은 36.5도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뿌려 먹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곁들이지 않은 냉면 고유의 맛을 선호한다.
시큼하고 사각사각한 무절임은 냉면과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포인트다. 일반 면보다는 녹차를 섞어 만든 면의 맛이 일품이다. 고기 먹은 후 먹는 냉면은 또 다른 별미다. 더위를 식히려는 것이 아니라 고기의 느끼함을 덜어주는 개운함이 냉면의 기능성을 한 차원 끌어올린다. 한 가지 음식으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물냉면의 밋밋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빔냉면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바닥에 살짝 깔릴 정도의 육수 사이에 1인 기준의 면 한 덩어리가 중심을 잡고, 잘 익은 단풍이 산을 두르며 흘러내리듯 매콤 새콤한 새빨간 양념으로 그 위를 감싸준다. 그 위에 말린 고기 한 두 점을 올리면 제법 모양새가 갖춰진다.
마지막 일점으로 진한 노란빛이 식욕을 돋우는 삶은 계란 반쪽을 적절히 배치하면 마침내 안정감 있는 구도가 완성된다. 질긴 면을 수월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일도양단의 가위질이 행해지고 나면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막국수와는 경쟁 관계 이면서도 서로를 보완해 주는 파트너다. 선의에 경쟁을 하지만 서로가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의 지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선택에 고민을 안겨준다. 다음번엔 막국수 집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