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or 배우지 못한 것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는 19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34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무려 97주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본이 나와 전국을 강타한 후에도 몇 달간 버스만 올라타면 라디오에서 이 책 광고가 나왔다. 우리 동네 서점에도 이 책을 높이 쌓아 놓고 팔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책을 좋아하는 친구한테 내 생일선물로 이 책을 선물 받았다.
그 후 2년 뒤 1990년 4월에 ‘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 ‘ 이란 후속작이 나왔다. It Was on Fire When I Lay Down on It. 전작만큼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는 이 책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나에겐 미국 다운 유머와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깊은 통찰을 제공했던 책이었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지 않은가?
미스터 폴리노가 키우는 벨라는 5살 된 로트와일러 여자애다. 2달 전부터 오른쪽 뒷다리를 많이 절어서 오늘 왔는데 양쪽 무릎을 비교해 보니 오른쪽 무릎부위가 두 배는 더 부어 있다.
“미스터 폴리노, 벨라 오른쪽 무릎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엑스레이를 찍어 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벨라가 힘이 너무 세고 많이 움직여서 마취를 안 하고는 엑스레이를 못 찍을 것 같아요 “
“ 내가 벨라를 같이 잡고 찍으면 안 될까요? 그럼 벨라가 안정돼서 잘 있을 건데, 내 말은 잘 듣는다고요 난 전신마취는 너무 겁나고 무서워요 벨라가 어떻게 될까 봐 마취에서 안 깨어나면 어떡하냐고요”
“ 미스터 폴리노 , 법적으로 엑스레이 노출량을 기록하는 명찰이 없으면 엑스레이 방으로 들어오실 수가 없어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 된 곳이라 안됩니다. 그리고 엑스레이가 사진 찍는 거라 똑같아서 계속 움직면 사진이 선명하게 안 나오고 벨라도 불필요한 방사선에 계속 노출되니까 준마취라도 해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해요”
“ 전신 마취랑 준마취 차이가 뭔데요?”
“ 전신 마취는 모르핀 같은 마약을 혈관으로 주입하고 그 뒤 기관지 튜브를 기관지에 삽입해 가스로 마취를 유지해서 두세 시간 마취가 되어 있는 것이고 제가 추천하는 준 마취는 프로포폴 같은 약물주사를 혈관으로 주입해 보통 10분간 마비상태를 유지했다가 바로 깨어 나는 진정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되시면 준마취를 해서 빨리 엑스레만 찍게 해 주세요 “
문제는 여기서부터 일어났다. 오른쪽 무릎 중심에 흰색 물감이 검은색종이에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은 sunburst sign 이 검은 엑스레이필름에서 뚜렷이 보인다. 모든 임상수의사들 머릿속으로 첫 번째로 떠오르는 병명은 Osteosarcoma 골육종 악성 종양이다. 물론 곰팡이 간염, 세균감염, 오래된 십자인대파열, 퇴행성 관절염, 자가 면역질환 등등 몇 가지 가능성도 배제해야 한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는데 엑스레이 만 가지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 뼈에 암 같다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미스터 폴리노 오른쪽 무릎에 악성종양처럼 보이는 병변이 엑스레이에서 보입니다. “
대학에선 배운 건 Osteosarcoma 가 뼈에 있는 것 같으면 다음 단계는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서 혹시 폐로 악성 종양이 전이가 되었는지를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교과서적이고 스탠더드 한 접근법이다. 폐는 공기가 많기 때문에 엑스레이가 잘 통과할 수 있어 엑스레이 필름이 아주 진한 검은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혹시라도 종양이 전이가 의심된다면 지방이 많은 복부 엑스레이보다 확실히 알 수 있고 너무 초기만 아니라면 놓치지 않고 발견할 수 있다.
“ 다음 단계는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서 악성 종양이 폐로 전이되었는지 스크린을 하고 만일 폐가 깨끗하다면 암전문의한테 가서 조직 검사를 하고 악성종양이 너무 빨리 전이될 것 같으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던지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합니다. 다시 준마취를 하고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합니다. “
“ 아니 또 마취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는다고? 첨엔 무릎만 찍는다고 했잖아? 흉부엑스레이 찍어야 된다고 말은 안 했잖아. 만일 흉부엑스레이 찍어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게 무슨 의미인데? 암이 아니란 말이잖아? 아님 그래도 암이란 말이야? 헷갈려 죽겠어. 나 2주 전에 정리 해고 돼서 실직상태요. 준마취해서 무릎 엑스레이 찍는 비용도 겨우 마련했다고. 만일 암이면 그 비용은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고, 악! “
솥뚜껑만 주먹으로 벽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거세게 치면서 조폭이나 갱단 영화에서 들었을법한 쌍욕을 하면서 자기 인생은 왜 이러냐면 직장 잘린 지 며칠 안 돼서 사랑하는 벨라가 암이 걸렸냐며 세상을 원망하며 비명을 지르는데 짐승 한 마리가 벽에 부딪치며 표효하는 것 같다. 참고로 미스터 폴리노는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만큼 큰 키에 온몸이 근육덩어리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을 것 같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다.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이란 책 제목이 내 머릿속을 지나간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노를 참을 줄 알고 자기감정을 통제하며 , 사람이 다치거나 기물 파손을 유도할 수도 있는 폭력적인 행동은 절대 안 된다는 걸 유치원에서 배울법한데…. 배우지 못했나 보다.
‘ 버릇없는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않으면 무례한 어른으로 만들어진다. ‘
대학에선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배울 수가 없다. 주인에 경제적 상황, 감정적 불안정, 분노조절 장애, 가능성에 대한 이해력 부족 또는 강한 부인.
“ 미스터 폴리노 , 아까 마취 풀릴 때 보니까 모니터에 나타난 산소 포화도도 정상이고 혈압, 맥박 다 정상이었습니다. 만일 암이 폐로 많이 펴져있으면 산소 포화도도 낮게 나오고 마취에서도 더 늦게 깨어 낫을 거예요. 물론 폐소리와 심장소리도 정상이었습니다. 폐로 암이 전이 안 되었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물론 흉부 엑스레이를 안 찍었으니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 만일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 항생제와 스테로이제로 치료를 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
" 아니 그럼 처음부터 아닌 것 같다고 하지 내가 난리 치니까 이제야 괜찮을 것 같다고 하는 거요? "
"아닙니다 지금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할 것 같으니..... 재정적으로 더 이상 진단과 치료를 못하신다고 하셔서요.... 일단 약을 먹여 보시죠 "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2주간 먹고 온 벨라는 정상으로 걸어서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쪽 무릎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 벨라가 약을 먹고 나서 이삼일만에 다시 잘 걷기 시작하고 아파하지도 않아요, 저번에 내가 벨라가 암이라고 하니까 너무 놀라고 경황이 없어서 여기서 무리를 일으키고 무례했던 거 사과합니다. "
미스터폴리노는 그래도 괜찮은 유치원 선생님을 가졌었나 보다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도 할 줄 아는 용기를 배웠으니. 내가 다니던 정덕 유치원에 개나리반 선생님이 떠오른다. 말 안 듣는 우리를 항상 따뜻한 미소로 한 명 한 명 안아주시던 그 따뜻하고 친절했던 그분을. 그분께서 심어 주셨던 친절에 열매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항상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 친절하게 대하는 그분에 미소를 똑같이 닮고 싶다. 나에 작은 친절과 관용적인 태도로 미스터 폴리노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친절에 씨앗이 되길 바란다.
" 미스터 폴리노,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벨라가 좋아져서 정말 저도 기쁩니다. 그렇지만 계속 정기첵업을 오셔야 합니다. 신체검사만 할 거니까 비용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두 달에 한 번씩을 오셔서 제가 무릎 사이즈를 계속 모니터 할 겁니다. 무리한 운동은 시키시면 안 되고요. "
To teach is to touch a life Forever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이 글을 정덕 유치원 개나리반 선생님께서도 읽어 보시면 기뻐하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