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질, 커피숍을 잃다

by 피카타임

커피숍을 잃었다. 두 곳을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두 곳 모두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나니 발걸음을 다시 하기가 쉽지 않았다.

커피숍을 잃어서 나타난 결과, 꼭 해야 하는 일들 말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글을 쓴다던가, 타국의 언어를 공부한다던가,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읽는다던가 하는 모든 것들.

이런 결과들은 삶을 단순화시켜 주었다. 삶의 주요 테마가 겨우 일과 휴식, 그리고 지식의 습득이 주는 기쁨과 전혀 관련이 없는 몇 가지 공부.

표면적으로 보면 일주일에 한두 번 커피숍에 가 앉아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고 생활이 크게 달라질까마는, 그곳에서 하는 행위들에서 파생된 생각들과 그 생각의 더미에서 내게 밀려오던 감정들이 함께 사그라들고 나니 무채색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무채색은 가볍고 쿨했다. 그리고 텅 비었다.

커피숍에 발걸음 하던 오랜 세월은 계절 따라 색이 입혀졌다. 때론 무위 속에서도 아름다운 색을 지녔고, 그 색을 보는 것만으로 그 시간에 의미를 두곤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이 시간이 낭비되는 시간은 아닐까, 이 시간의 기회비용은 대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 반대의 실체 속에 있는 요즘. 별거 없이 냉랭하다.

몇 주 전부터 동네에 새 커피숍을 물색하러 다닌다. 신대륙을 꿈꾸는 항해사처럼 때론 절망하고 때론 다시 희망하며 이곳저곳을 떠돈다.
커피숍의 수가 십만 개를 넘나들고 인구 대비 세계 제일의 위치에 있다는 한국에서, 이렇게 마음 두고 정착할 커피숍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던가.
물론 누군가와의 약속 장소로서 커피숍은 차고 넘친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어떤 날은 친구들과 앉아 제비 뽑기를 할 지경이다. 매주 새로운 곳을 가도 매주 갈 곳이 또 생긴다.
그런 커피숍은 여행지와 같다.
하지만 내가 찾는 커피숍은 일상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

십 년을 한결같이 다닌 커피숍은 공원 안에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곳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통창으로 공원의 사계절을 뚜렷이 바라볼 수 있었고, 하루 속 해의 움직임 역시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보는 기쁨이 있고,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을 보는 환희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겹벚꽃 나무가 있다. 늦봄의 겹벚꽃이 커피숍 마당을 가득 채울 때면 나는 24시간, 그 계절이 지나도록 그곳에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아름다운 곳이 작년부터 빛을 잃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이나 관리자가 바뀐 걸까. 아님 그 주인이나 관리자에게 어떤 이유로 이곳은 더 이상 관리의 대상이 아닌 걸까.

처음에는 메뉴가 하나씩 줄기 시작했는데, 메뉴판은 어수선한 채 그대로 있었다.
늘 한결같이 활기차고 친절했던 오랜 직원들이 모두 바뀌고부터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얼굴의 직원들이다.
그곳은 낡음이 미덕인 곳이다. 시에서 역사적인 장소를 공원으로 바꾸었고, 대부분 시설물들은 예전에 사용하던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거나 다듬어서 유지 중인 곳이었다.
낡은 것들에 가장 위험한 적은 방치였다. 그간 잘 관리되어 오던 커피숍 건물이 어느 순간 방치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커피숍 앞마당 나무 데크는 군데군데 부서져 푹 꺼져 있고, 청소도 손님이 있는 시간에 얼버무리듯 대충 하더니, 한여름 어느 날에는 테이블 아래로 해충이 기어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한쪽을 잠가 둔 화장실은 더욱 불쾌한 환경을 부추겼고, 그 탓에 나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러고도 그곳의 정취와 그간의 정에 이끌려 발걸음은 끊지 못하고 불만만 가득 쌓여 가던 어느 날, 손님들이 드나드는 자동문이 고장 났다.
첫날은 아무렇지 않게 불편을 감수했고, 그다음 주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나도 자동문은 수리되지 않았다.
상식을 뛰어넘었다. 장사를 하는 가게에서 손님을 위해 문 하나 고쳐 둘 마음이 없다니…. 커피숍 주인은 그저 마지막 남은 무언가 하나까지 고장 나길 기다렸다가 팔아치울 모양이었다.
이렇게 커피숍을 대하는 주인의 마음에 크게 상심한 그날, 나는 십 년의 연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그곳을 떠났다.
한참 이곳에 깊이 빠져 있던 시절, 어떤 이유로 나와 이곳은 끝을 맞이하게 될까 한 번씩 상상해 보곤 했다. 이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곳이었다. 이곳을 오지 않고 내가 살 수 있을까? 이곳을 대신할 만한 장소가 있을까? 있다고 한들 이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런데 나의 이사도 나의 죽음도 아닌 이유로 끝을 맞다니. 이런 이별의 사유가 내게 충격을 준다.

연인들의 이별에 가장 많은 이유는 '변질'일 것이다. 진짜 사랑이 변했든 어느 한쪽만의 느낌이든, 처음 기대했던 사랑의 모습이 유지되지 않을 때 그 사랑은 지속되기 어렵다.

나는 이별의 이유 중 '변질'이 가장 슬프게 여겨진다. 그것은 산산조각이 난 유리 같다.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한번 변질된 것은 처음의 모습으로 회복되기 어렵다.
변질은 때로는 적당한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는 것은 완벽한 종말을 의미한다.

커피숍과 나의 이별에는 이유가 있다. 내 마음에서 비롯된 이유 없는 변질이 아니므로, 나는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순간에도 마음 한켠에는 아주 작은 희망을 남겨두었다. '네가 만약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오랜만에 기대감을 갖고 찾은 발걸음에 여전히 고장 난 자동문을 보고는 나는 굉장히 화가 나서 그 길로 돌아서 떠났고, 한동안 상실감과 오랜 습관을 잘라버리는 데서 오는 금단 증상 같은 것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