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실, <스타이즈본>과 함께 떠오른 사람

by 피카타임

잃어버리다, 끊어지다, 사라지다, 끝나다, 더 이상 없다, 그리고 상실.
결국은 다 같은 말이지만, 상실이라는 말은 뱉고 나면 텅 빈자리가 보인다.
사라진 것보다 사라진 후 남은 곳, 뻥 뚫린 그곳의 공허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단어였다.

파도의 들고 남이 멈추지 않듯 삶에도 얻고 잃음이 계속적으로 일어난다.
얻음을 크게 여겨 감사히 살라 했고, 잃음에 연연하여 비극으로 살지 말라 했지만,
실상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기란 힘든 일이었다. 나에겐 그랬다.
얻은 게 감사함 속에서도 잃은 건 여전히 상처로 남아 아팠고, 잃는 중에도 얻는 것들로 인해서 또 웃으며 살아갔다.

게다가 상실은 대단히 수동적인 말로 다가온다. 상실에 대한 나의 책임은 미미하거나 때론 없기도 했다.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의 대부분은 관계의 지속을 바라는 감정의 연속선에서 찾아왔다. 그러니 상실을 인식하고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오는 감정은 종종 분노였다. 사라진 무언가 들을 나는 계속 갖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떼를 쓴다. 그러니 상실 후 잠시는 공허와 함께 에너지 고갈로 허우적댄다.

공원 속 커피숍과 절연 후 나는 큰 상실감 속에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가야 하는 곳을 잃자 방향 센서가 고장 난 기계처럼 제자리에서 갈팡질팡하다 시간만 버리기 일쑤였고, 무엇보다도 주말의 휴식에 질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빨리 찾아야 했는데, 그러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 집 가까이에 있을 것
- 두어 시간 혼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 방해도 받지 않고, 눈치도 보이지 않을 것
- 손님이 있는 시간에 절대 빗자루질을 하지 않을 것
-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일정할 것
-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닐 것
- 어느 한 컷, 눈을 둘 한 컷에 어린 시절이나 어떤 여행지가 떠오를 만한 풍경이 있을 것

이 조건을 만족할 만한 커피숍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커피숍을 잃은 어느 주말, 평소라면 커피숍의 풍경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에 집에서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넷플릭스에 미리보기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는데, 화장기 없는 여주인공이 옆에 나란히 앉은 남자 주인공을 향해 읊조리듯 완성되지 않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 이끌려 보게 된 <스타이즈본>이 얼마나 유명한 영화인지는 영화를 보는 도중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영화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영화 주인공이 그 유명한 레이디 가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레이디 가가는 내게 소고기 드레스를 입은 사이코일 뿐이었다. 생고기로 만든 드레스라니! 그 후로 레이디 가가라는 이름만 들으면 설마 하고 찾아본 사진에 모자장식을 대신해 머리에 올려둔 넓적한 소고기 한 장만 떠올랐다.
거기까지 가면 안 되었다. 최소한 머리장식은 소고기가 아니었어야지.
한번 강하게 박힌 편견은 쉽게 깨어지지 않았고, 그 어떤 작품도 노래도 영상도 심지어 기사도 그녀의 이름이 붙어 있으면 최대한 빨리 피해 버리곤 했다.
그러니 사실상 나는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앨리와 그를 연기하는 레이디 가가에 푹 빠져들어 공연하는 장면들을 몇 번씩 돌려보느라 영화의 러닝타임이 두 배로 길어졌다.

잭슨 메인.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이던 인기 많은 록스타.
영화 초반 난 그가 결국에는 앨리에게 싫증 나서 그녀를 떠나려나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취한 그 남자의 눈빛에는 선함과 사랑이 어려 있었다.

록스타 잭슨의 모습을 보면서 난 기억에서 잊고 있던 오래전 한 사람이 떠올랐다. 기억은 소멸이 아니라 적재되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다. 기억은 자기만의 의지로 자기만의 타이밍에 떠올라 나를 놀라게 한다.

오래전 그는 내 기억 속에 자주 취해 있었다. 취하지 않은 날에도 취한 듯 행동이 느렸다. 그리고 매일같이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 패배의식이 가득한 채 가을 나뭇잎처럼 마음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사람이었다.

내게 와서 머무는 동안 그가 원하는 게 편안함이든 사랑이든 그 속에서 세상을 잊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의 필요를 모른 체했다. 나에게는 무게를 지닌 것들이 그에게는 무게가 없었다.
때때로 나의 관대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그를 이해하려 했으나, 그의 먼지 같은 사고방식은 한 번도 내 마음에 모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가벼움 속에도 진심이 있었다. 하필 그가 진심을 가졌는지, 아니면 그 진심을 하필 내가 본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매몰차게 돌아서서도 그를 오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우도가 좋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데 불쑥 그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앨범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가. 그때 나에게 왜 우도에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까… 기억이 아주 멀리까지 나를 데려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휸이었다. 전화를 받자 휸이 대뜸 묻는다.


"보홀 갈래, 우도 갈래?"
"……우도?" 놀란 내가 되묻자, 휸이 말한다.
"우도? 어, 알았어. 우도 가자." 그러고 전화가 끊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1. 변질, 커피숍을 잃다